EP·61
청은 머리를 열심히 문질렀다·
사실 상처를 문대봐야 나아지는 것도 없다·
하지만 너무 아픈 걸 어떡해·
아씨 계속 아파····
이거 머리 가죽 찢어진 거 아닌가?
청이 열심히 문지르며 틈틈이 손을 확인했다·
혹시 피가 묻어나오나 확인해 본다·
놀랍게도 손은 깨끗했다·
이 고통은 찢어진 고통인데? 이상하다?
본래 청이 엄살이 심한 편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로 아픈 모양·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서문수린의 마음에도 측은함이 솟아올랐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 제대로 된 스승도 제자 이기지 못하는 법이었다·
“하아· 그래· 마공을 익혔으나 눈빛에 악성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제자가 충분히 조심하고 있음은 알겠구나·”
터무니없는 오해였지만 어쨌거나 화를 풀겠다는 소리다·
청이 화색을 띠며 대답했다·
“맞아요· 안 들키면 장땡”
딱!!
“악! 마 맞은데 또· 으····”
쓸데없는 청이 추임새를 넣다가 괜히 핵꿀밤 한 대를 적립했다·
눈물 한 방울이 또다시 또로로로···
서문수린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조심만 하면· 조심을 하면···”
서문수린이 뒷말을 흐렸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그 사악한 마공을?
어쩐지 손이 유달리 어여뻐 보이더라니·
“소수마공은 살과 뼈를 직접 가르며 악성을 쌓는단다· 사람이 점차 사악해지며 종래에는 살인 행위 자체를 기쁨으로 여기는 괴물이 되고 마는 것이야· 제자는 그에 명심하고 정말로 위급할 때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청은 이미 늦었다·
사람의 탈을 쓴 악인 살해 전문 괴물이 넙죽 대답했다·
“네! 사부님·”
“그래· 이미 익혔으니 어쩌겠느냐·”
그렇다고 제자의 단전을 폐하고 사지 근맥을 잘라 마공의 싹을 자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백도 정파라고 하는 치들이 이 사실을 알면 분명 그리하려 들 터였다·
서문수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선 또 막상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모자란 년이 마공 좀 익힐 수도 있지·
천살의 천형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번듯하게 자란 착한 아이거늘·
과거 셀 수 없을만큼 많은 마인을 척살했던 서문수린의 생각이었다·
“그래· 제자가 혹여 그 마공을 들키게 되거든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것인가요?”
“아니라고 잡아떼거라·”
“네?”
서문수린이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마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된단다· 흠· 대충· 그래 신녀신수쯤 하면 되겠구나·”
아니라고 우기라는 소리였다·
청이 생각했다·
강호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건가?
“어··· 그래도 되는 거예요?”
“안 되지· 정 집요하게 굴면 이 스승이 창안한 무공이라 하거라· 그러면 뭐 어찌하겠느냐? 제깟 것들이 감히·”
청은 몰랐지만 한 이름 높은 무인이 자신의 모든 명예를 걸고 함께 짊어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안 들킬까요?”
서문수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연습을 해야 한단다·”
“연습이요?”
“그래· 제자야· 네 내공의 성질이 정양이라 극히 사음한 소수마공과는 맞지가 않지·”
서문수린이 가르침을 베풀었다·
음양은 넷으로 분류함을 기본으로 한다·
태양의 기운을 양이라 한다·
뜨겁기에 순양 밝고 바르기에 정양·
달의 기운은 음이라 한다·
어둡고 사이하여 사음 차갑기에 순음·
이 네가지 성질에 중용을 담아 여덟이 된다·
중용은 성질로 치지 않기에 여덟이었다·
그저 뜨겁다· 뜨겁고 밝다· 맑고 바르다·
뜨거우나 사이하다· 중용· 밝으나 차다
어둡고 사이하다· 차고 어둡다· 그저 차다·
순양 극양 정양·
사양 중용 정음·
사음 극음 순음·
이러한 배치에서 양의 기운을 빨갛게 음의 기운을 파랗게 색칠한 도식이 음양태극이었다·
바로 팔괘가 음과 양으로 비롯한 이유였다·
여기에다 화목수금토의 속성을 더해 음양오행 우주 만물의 이치가 되는 것이다·
서문수린이 전에 맥을 잡아본 바 청이 익힌 월녀심결은 중용의 도를 담았다·
그리고 신농 염제의 심상을 담아 만든 주양세심경은 양의 성질 중에서도 바른 것 정양의 기운을 담은 운기법이었다·
하위의 선녀공 서후천애심결 역시 마찬가지·
현재 청에게 흐르는 내기가 정양으로 치우쳐 있다는 뜻이었다·
청의 노을빛 검기가 그 증거였다·
“소수마공은 사음을 기초로 한 무공이란다· 그러니 제자가 정양한 기운으로 마공을 다룰 수 있게 되면 그 흔적이 마공과 다를 것이 아니더냐·”
흐르는 내공의 성질을 분리하여 정양의 기운만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소수마공을 사용해도 흔적이 달라진다·
그러면 다른 것이라고 우겨도 된다·
엄밀히 말하면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수련은 어떻게 하는데요?”
“마침 절기가 겨울이 아니더냐? 제자가 천운이 따라 때를 아주 잘 맞췄구나· 음양이 서로 부딪혀 강하게 이는 것이니 외기가 음한 때에 오히려 양기가 솟는 법이란다·”
“겨울이라서 수련하기 좋다는 말씀이시죠?”
“그럼· 그리 어려운 수련이 아니란다· 오히려 아주 간단한 편이지·”
간단한 수련이라니!
청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제자가 뭘 하면 될까요?”
서문수린이 대답했다·
“벗으려무나·”
“네?”
오잉? 잘 못 들었나?
이상한 소릴 들었는데·
청이 긴가민가했다·
그러자 서문수린이 다시 말했다·
“차가운 때에야 비로소 온기가 와 닿는 법이 아니겠느냐·”
“어 그 말씀은···”
서문수린이 인자하게 웃었다·
“그렇단다· 맨몸으로 세상의 음한지기를 직접 느껴볼 뿐이니 세상에 이보다 쉬운 수련이 또 달리 있겠느냐?”
—-
사람에게 집은 그저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집이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 가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이랬다·
편안하고 따스한 안식처·
그러니 따뜻하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집은 집이 아니다·
그저 사람을 좌불안석 불편하게 옥죄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은 집을 잃었다·
“추워···”
청이 덜덜 떨며 생각했다·
모처럼 마련한 내 집인데!
내 집에 불도 못 때고!
이불도 다 치우고!
심지어 창문이랑 문도 떼 가고!
그래놓고는 옷이라고 주는 것이 겨우 어깨끈 달린 얇디얇은 천 쪼가리 한 장이 전부였다·
본래 의복의 기원이 몸을 보호하는 데서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천 쪼가리는 도저히 옷이라 할 것이 못 되었다·
심지어 속옷까지 다 뺏어갔다·
거기에 신녀봉 산꼭대기 겨울바람은 매섭다·
살을 에다 못해 아예 후벼파는 수준이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위아래로 파고드는데 그 아니더라도 얇은 천 쪼가리가 워낙에 통풍이 좋아서 얼음 바람이 열린 문 드나들듯 했다·
본거지 위치든 암호 해독 방법이건 아는 대로 다 말하겠습니다·
제발 이불 한 장만 주세요····
아니 생각해보니 화나네·
이딴 게 수련?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청의 분노와는 달리 성과는 뛰어났다·
청이 여태까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고수가 추위에 강하다고 한들 정도가 있는 법이다·
한겨울에 다 비치는 얇은 천 한 장 꼴랑 두르고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처음에는 아 이제 죽는구나 싶을 때 치솟아 올라 전신을 휘감는 뜨거운 열기로 버텼다·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몸을 데워주고 가라앉는 얄미운 열기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반·
이제는 정양의 진기를 제법 능숙하게 다루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춥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최소한의 체온 유지가 가능해졌을 뿐·
그런 이유로 청은 마치 덜덜덜덜 지진이라는 개념 자체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누군가 지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손가락을 들어 서문청을 가리켜도 될 수준이었다·
밥 주러 온 진장명이 그 모습을 구경했다·
“추워?”
“지진짜 주그글 것 같아···”
“그러면 언니 내가 안아 줄까?”
“어···”
청이 갈등했다·
그러나 국법이 지엄하고 하늘과 땅이 멀쩡히 눈 부릅뜨고 있지 아니한가·
예전처럼 긴급 피난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어찌 감히 미성년자를 품에 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물론 아동 인권이 정립되지 않은 중원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아직 청의 마음속에만 존재했다·
“아아안 돼···”
“칫·”
“그근데 서설마 오느늘 점심도도···”
진장명이 가져온 찬합을 열었다·
“냉면· 냉채·”
“아· 제제발···”
청이 결국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을 떨궜다·
원시 중국 미개 고대에서 냉면이라면 그저 차가운 국물에 풀어놓은 면류의 총칭이었다·
거기에 차가운 채소와 삶아서 식힌 여러 가지 고기를 곁들인 냉채가 커다란 찬합으로 삼 층에 달했다·
제발 따뜻한 거· 따뜻한 게 먹고 싶다·
그러나 추운 몸에도 배는 고팠다·
청이 냉채를 퍼먹으며 생각했다·
아· 근데 맛있다····
툴툴거리면서도 찬합을 아주 깨끗하게 비운 청이 방구석에 무릎을 껴안고 몸을 웅크렸다·
창문도 없고 문도 없으니 집안임에도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나마 바람이 덜한 자리였다·
그렇다고 벽에 붙으면 한기가 올라온다·
벽과는 또 미묘한 거리를 둔 자리였다·
“피리 불어 줘·”
“내내가가 피리리 오메·”
청이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전신으로 번져 경련이라도 일으킨 마냥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래도 이렇게 추위를 크게 한 번 떨어주고 나면 잠시동안은 조금 나았다·
“피리 불어 줘·”
“아씨· 그거 차가운데· 피리가 아니라 무슨 얼음덩어리야· 손가락 시려·”
“언니 빨리·”
“너 쪼그만 게 진짜 집요한 데가 있어···”
에휴·
청이 한숨을 쉬며 방구석에 내팽개친 복신적(싯가 약 일만 금)을 집어 들었다·
통짜 한철로 된 피리였다·
소리가 나려면 그냥 불어서는 어림도 없고 전음의 묘리를 살려 내공을 실은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
서문수린이 설명을 해주기는 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소리가 난 이후로는 그 주인의 내공이 수십 년 정도 남아 다른 이가 연주할 수 없게 된다던가·
하지만 너무 추워서 반은 흘리고 또 반절은 어려워서 못 알아들었다·
그냥 불어서 잠금해제 같은 건가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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