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
채음보양이란 여인의 정을 취해 양기를 돋우니 즉 사내가 하는 수법을 말했다·
도가에서 만들어진 양생법으로 운우지락을 통해 남녀가 서로 즐겁게 진기를 키워가는 너 좋고 나 좋은 수법이었다·
그러나 나만 즐거우면 내공 증가의 효과가 수백 배는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한 후레자식의 막대기로 인해 밝혀지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를 상하게 하는 수법은 사악하게 여겨지고 서로 즐거운 수법은 즐거운 가정을 영위하기 위한 쑥쓰러운 지식이 되었다·
강호가 넓고 사람의 취향은 여럿이다·
채양보양 역시 존재하고 이를 주력으로 삼던 문파도 있었으나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채음보음으로 유명한 천화전당의 경우 백도 정파의 문파로 분류되어 아직까지 멀쩡히 영업을 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의 기준이 제법 편파적인 편모가 있다고 하겠다·
심지어 천화전당을 소재로 한 춘화집은 당당한 춘화계의 한 소분류로 인정받았으니·
그리고 채양보음이 존재했다·
이를 주력으로 하는 문파가 있어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환희궁이다·
남자에게 가장 행복한 죽음을 선사하겠다는 초대 환희궁 조사 복상마녀 선우설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내가 환희궁도의 가랑이 아래에서 쪽쪽 빨려 숨을 거뒀다·
수련을 위해 타인을 상하게 하는 수법이기에 환희궁은 당연히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멸문은 면한 채로 신강 땅 저 멀리로 도망쳤으니 하필 중원 침략의 기치를 세우고 복수심을 키우는 마교를 만났다·
마교에의 합류는 당연한 순서였다·
현재 그 환희궁의 수장은 서시신녀 함월이라고 하는 여고수로 알려져 있다·
서시는 고금제일미녀이다·
서시신녀라고 하는 별호는 함월의 미모가 아닌 두꺼운 낯짝을 잘 표현해준다·
스스로 서시신녀라 별호를 짓고서는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에 중원인들은 ‘어휴 그래라· 그냥 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래 그냥 서시 해라·’ 하는 체념으로 그냥 한 글자만 더 붙여주었다·
서시병신년 함월·
애초에 마교에 박혀서 나오질 않는 년이다·
그 뻔뻔한 낯짝에 칼질 한번 해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라면서·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지금이 바로 그 한을 풀 수 있는 기회였다·
바로 서시병신녀 함월이 호북성 가생이까지 몰래 침투한 상황이었으니까·
“후후 대모의 제자를 납치해야 하다니· 본녀의 필생의 적수에게 그리 비열한 수법을 쓰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은 일이랍니다만·”
듣고 있던 소년 마교의 최연소 비각주 철면만통 지승주가 특유의 그 표정 없는 얼굴로 생각했다·
‘아주 지랄을 하고 자빠졌구나· 사내 정기나 빼먹는 년이 여중제일인을 두고 무슨 필생의 적수· 그 나이 처먹고도 초절정 후기밖에는 안 되는 년 주제에·’
그 고까운 속마음이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지승주는 태어난 이래 열다섯 해를 넘기는 지금까지도 단 한 번 표정을 지어본 적이 없다는 철면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철면만통이었다·
철가면을 씌워놓은 듯 표정 없는 얼굴·
그리고 앉아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머리를 가졌다고 하여 만통·
합쳐서 철면만통 지승주·
“필히 성공해야 하는 일이오· 지존께서 친히 강림하셨으니까·”
“지존께서! 정녕 지존께서 여기 계신단 말씀이신가요?”
함월의 표정이 황홀감에 젖어들었다·
“만약 이번 일을 성사시킨다면 소녀가 지존의 은총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각주는?”
지승주가 대답했다·
“옘병· 소녀는 무슨·”
‘물론이오·’
함월이 도끼눈을 떴다·
“비각주· 또 속마음이랑 말이 반대로 나오셨군요? 그런데 옘병이라니? 소녀에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미안하오· 가끔 이러하오· 내 말수가 없는 편이다 보니 혼자 되뇌는 것이 버릇이 되어·”
지승주가 늘 똑같은 무표정으로 사과했다·
철면만통이 이러기가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교인들 중 지승주의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함월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지만 비각주를 달리 부르는 말이 마뇌였다·
마교 지존의 전속 책사를 부르는 말이다·
이 표정 없는 쪼그맣고 건방지며 되바라진 꼬맹이가 바로 마교지존의 오른팔이다·
속이 끓는다고 해코지를 할 수도 없다·
함월이 속을 삭이는 사이 꼬맹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납치야 굳이 서시신녀께서 나서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오· 하지만 바로 그 서문수린의 제자이니 길들여 말을 듣도록 하는 일이 큰일이지·”
“그럼 납치에 더해 그 큰일까지 해내게 되면 어떨까요? 지존께 은총을 입을 수 있겠지요?”
함월의 표정에 호색한 기대가 어렸다·
서시병신년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실제로 그 미모가 천하를 울릴 정도는 된다·
겉으로 보면 서른쯤 되는 농염한 절세미인이었다·
겉으로는· 겉으로만 보면·
‘지존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환갑 넘은 예순 셋 할망구를 상대해야 한단 말이냐·’
지승주가 속마음을 감추고 대답했다·
“···정말로 그리된다면 지존께서도 살펴 주실 것이오·”
동시에 생각했다·
‘아· 지존의 자리가 참으로 딱한 것이구나·’
지존이 딱하게 느껴진 지승주가 불편한 화제를 급히 전환했다·
“그래서 서문청을 멀리 유인할 방도가 있다고 하셨소?”
“제가 정파의 협객인 줄 아는 계집만큼이나 다루기 쉬운 년이 따로 있겠어요? 소녀가 직접 나설 것인즉 비각주께서는 꾀어낸 그년을 곱게 묶어놓을 준비나 하시면 될 것이랍니다·”
지승주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옘병· 소녀는 무슨·”
‘물론이오·’
“아· 또 말이 거꾸로 나왔군 송구하오·”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닌가?
함월의 이마에서 혈관이 비죽 솟았다·
—-
경공을 전개하는 청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
왜냐하면 저기 산 너머 사천이 청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라 붙은 수많은 요리들이 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와 라!
화끈한 매운맛의 도전이었다·
청은 정파의 협객으로서 그 도전을 받아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렇게 식탐을 원동력으로 관도를 쭉쭉 나아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제발 도와주세요!”
사내의 심금을 울리는 가녀린 목소리였다·
청은 비록 여인의 몸이었지만 속은 또 그렇지 않았다·
청이 월녀산보의 신묘한 보법으로 가던 방향을 직각으로 틀었다·
수풀을 헤치고 목소리를 따라 나아가니 반쯤 헐벗은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상의는 찢어져 젖가슴이 거진 다 드러나고 치마 역시 시원하게 허리까지 트여 그 속옷이 훤히 보였다·
“도와 도와주세요 제발····”
“무슨 일이시 으음·”
청이 눈 둘 곳을 몰라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흘끔흘끔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본능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러자 여인이 와락 청을 덮쳤다·
여인의 달큼한 체향이 훅 끼치는 바람에 청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 이러시면 곤란· 안 되시는·”
“흐윽 흐으으으·”
여인이 청의 품속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청의 손이 갈 데 없이 허공을 휘젓다가 이내 조심스레 여인의 등을 쓰다듬었다·
절대 사심이 없는 순수한 위로였다·
아· 근데 되게 부드럽네· 이거·
청은 팽대산과 동행하면서 도시의 미인들을 두루 섭렵한 상태다·
게다가 선녀공을 익히는 신녀문도들의 미모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 눈이 너무 높아진 것이 아닐까 하는 참이었는데·
그럼에도 눈앞에 미인은 독보적이었다!
근데 뭐지?
순간 여인이 다급히 청의 손을 붙들었다·
“대협 제발 도와주세요! 마을에 악적이 들어서···”
뻔한 이야기였다·
마을에 도적 떼가 나타나 사내는 모두 죽이고 여인을 겁탈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실제로 중원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청이 추임새를 붙였다·
“세상에 그런 후레자식들이!”
“도와주실 도와주실 건가요?”
“당장이라도 싹 베어버리고 싶은 마음이네요· 그래서 그 놈들이 어디에 있는데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정말로···”
여인이 청을 붙들고 감사를 토했다·
동시에 여인 함월이 생각했다·
‘아이고· 쉽구나 쉬워·’
정파의 협객이라 하는 놈들이 뭐 이렇지·
화를 입은 여인에게는 같은 성별의 여류 무인들이 오히려 더욱 정의로워지기 마련이었다·
사내 새끼들은 말로만 정파지 이러한 때에 주변을 살펴보고 아무도 없으면 그대로 막대기 세워 덮쳐오는 놈이 절반이다·
물론 함월이 자주 써먹는 수법으로 잘 먹겠습니다 외치고 빨아먹긴 하지만 그 괘씸함은 어디 가지 않더라·
이 수법에도 여러 변주가 있었다·
개중에 좀 정의롭거나 고지식한 놈에겐 음약을 먹은 뜨거움 호소인 행세가 잘 먹혔다·
참으로 멍청한 새끼들이었다·
음약으로 해소가 안 돼서 몸이 터져 죽어?
그럼 세상에 누가 독을 쓰겠나·
음약 먹이고 옆에서 지켜보면 그만인데·
이제 이 년을 깊숙한 안가로 유인하면 나머진 마교의 무인들이 알아서 포장을 하겠지·
“그럼 소녀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함월이 가련한 척을 하며 척 앞장을 섰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짝·
동시에 푸욱·
“억·”
함월이 몸을 떨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젖무더기 두 개 사이 앙가슴에 삐쭉 튀어나온 칼끝이 함월에게 방긋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난 칼끝이야 하고·
함월은 초절정 후기의 무인이다·
하지만 완전히 방심한 때에 등 뒤를 찌르는 검기 듬뿍 담긴 칼날 앞에서는 초절정이라도 별 의미가 없다·
심장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경력을 체험하며 함월이 필사적으로 물었다·
“왜 어째서···?”
“음 사백 점이라서?”
“무슨 소리···”
함월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억울하긴 했다·
내 얼굴을 알고 있었구나·
그래· 서문수린 내 적수의 제자년이니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무슨 정파라는 년이 어쩜 이토록 자연스럽게 암습을 날리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살의 한 조각을 안 비치고····
함월의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수많은 남성을 빨아먹었던 흉악한 대마두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청이 칼날을 뽑았다·
보통의 무인은 칼날을 뽑을 때 찔러넣은 방향의 반대로 빼낸다·
하지만 청은 일단 칼이 들어가면 위아래옆옆 어쨌거나 진행과 다른 방향으로 빼내는 편을 선호했다·
츠확!
칼날이 함월의 겨드랑이 아래로 빠져나왔다·
아직 싱싱한 피가 콸콸 흘렀다·
코를 간질이는 향기로운 혈향·
청이 숨을 한가득 크게 들이마셨다·
후아 끝내준다!
맞아 이 향기! 너무 그리웠다구····
청이 히죽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올 때부터 좋은 예감이 들더라니·
굴러다니던 마두가 등짝을 다 보여주고·
청이 저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생각했다·
오늘은 역시 운이 좋군· 운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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