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
청의 단전에 새 식구가 합류했다·
차고 어두운 극음의 성질을 가진 신입이었다·
빙천마기!
북해 출신의 사악한 마기였다·
빙천마기가 의기양양 단전에 들었다·
그리고 주양진기를 보았다·
정양한 신공인 주양진기는 신입을 한 번 쳐다보고는 환희진기에게 눈짓을 보냈다·
월녀진기가 모르는 척 한번 고개를 끄덕했다·
환희진기가 자리를 박차고 빙천마기가 곧장 뒤로 돌아 달려나갔다·
“얘도 자동 수련이네· 개꿀····”
청이 빙천마기가 스스로 몸 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
삼 성에 이른 빙천수라마공이었다·
간밤에 시험을 해 봤는데 삼 성의 효능이 딱 일 성의 소녀환희경을 상쇄하는 수준이었다·
금색 무공의 능력치 상승이 빨간 무공보다 더 높다 보니 빙천수라마공 하나로는 소녀환희경의 부작용을 막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어떡하지?
이러면 빙백신공을 익혀야 하나?
사실 원래 청이 일천오백 점 교환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무공이 있기는 했다·
역근세수경이라는 내공심법이었다·
일전에 서문수린과의 대화에서 들었다·
‘사부님 만약 제가 세상에 어떤 무공이든 단 한 가지만 익힐 수 있다면 뭐가 좋을까요?’
그야 역근세수경이지 않겠느냐·
‘역근세수경이요?’
그래· 정도를 걷는 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내공심법이란다·
정신을 심마로부터 보호하는 효능은 주양세심경에 이어 천하에 두 번째로 강력하고 단전과 혈맥을 튼튼히 가꿔주기로는 천하에 감히 비교가 되는 무공이 없단다·
‘그럼 주양세심경이랑 비교하면 어느 쪽이 아악!! 진짜 진짜 아파요···’
제자가 아주 매를 버는구나· 벌어· 쯧·
역근세수경은 불가의 가장 위대한 무공이다· 우리 도가와는 가는 길이 다른 것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네가 익힐 수만 있다면 하아· 되었다·
어차피 얻지 못할 것을 입에 담아봐야 미련만 남는 것이니 제자도 앞으로 언급하지 말거라·
‘네···’
이렇게·
그래서 무공창으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역시 보라색이었다·
참으로 불경한 생각이긴 하지만 주양세심경보다 더 뛰어난 무공임에 틀림없다·
둘이 비등했으면 굳이 사부님이 불편한 심기 듬뿍 담아 수소핵꿀밤을 날리진 않았을 테다·
할 말 없으시니까 괜히····
그래서 이번에 익혀 돌아가 ‘짠! 스승님 제자가 역근세수경 그거 익혀왔어요!’ 하면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그런 계획이었는데·
마공만 늘어버렸지····
하지만 당장 강해져야 하는데 어떡해·
청도 눈이 있어서 납치 행렬 후반에 이르러 우글우글한 고수들을 보았다·
청이 경력에 비해서야 말도 안 되는 고수지 정작 천마신교 내에서는 흔한 절정의 무인에 불과했다·
당장 날 이렇게 편하게 내버려두고 있으니까·
다리 병신 행세를 한 덕분도 있지만 애초에 도망칠 수 있으면 도망쳐 보라는 거겠지·
그러니 일단 닥치는대로 무공을 모으자·
절정에 올랐을 때처럼 그러다 경지가 오르면 그 지존 호소인까지 노려보고
경지가 안 오르면?
뭐 힘을 모으며 눈치 보다가 불 지르고 튀면 되겠지?
허언증 있는 씨발놈이 대장이라서 만만하게 봤더니 아주 제대로 호랑이 소굴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
내 집 앞마당에서 납치를 당할 거라고 내가 어떻게 알아·
솔직히 억까다· 순 억까야·
꼬르륵·
허기가 청의 상념을 깨웠다·
“아· 배고프다·”
이미 해가 중천이었다·
간밤에 잠을 안 자고 밤산책을 했더니 무려 아침까지 거르고 여태까지 잔 것이다·
아침에 누가 깨웠던 것도 같은데?
꿈이었나? 음· 모르겠다· 배고파·
점심은 아직인가?
설마 지나진 않았겠지?
청이 주린 배로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였다·
문득 청의 귀로 들려오는 벽 너머의 소리·
-꺅 끄악 윽 악 꺅·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견포희의 방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설마 그 모지리가 또 얻어맞고 있나?
청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절름발이에 몰입을 잊지 않고서 절뚝절뚝 질질 끌며 옆방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절한 태움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다만 청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는데-
“아 사매! 일어났구나!?”
제자 다섯을 나란히 쌓아두고 그 위에 앉은 견포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맨 아래 깔린 제자가 유난히 창백했다·
저러다 숨넘어가겠는걸? 아깝게·
“저기? 견씨? 지금 무엇을 하시는·”
“응? 교육! 나는 이제 이대제자니까! 사매들 교육을 할 의무가 있지!”
분명 어제 그런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그거 진심이었구나·
“어라 천 사매? 머리 제대로 안 박니? 그리 연약해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정 힘들면 그만 살게 해 줄까?”
천 사매가 화들짝 놀라 바닥을 더듬었다·
나뒹굴던 화주잔을 찾아 바닥에 대고 그 위에 머리를 박았다·
참고로 중원의 화주잔은 술이 딱 두 숟가락 들어가는 앙증맞은 물건이었다·
와 이거 병뚜껑에 머리 박는 거 아닌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기적이었다·
인류학적으로 생각하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각이 결국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사람 괴롭히는 방법에서는 특히 그랬다·
사람의 본성이 사악하다고 주장한 철학자들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청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웁 우웁···! 웨엑!”
이번엔 그 옆의 한 여인이 토사를 분출했다·
“답 사매? 화식은 몸에 해롭다고 해서 모처럼 날고기를 구해 줬잖니? 음식을 그렇게 아끼는 사매니까 본보기를 보여야지?”
“하지만·”
“알지?”
답 사매가 떨리는 눈빛으로 바닥을 보았다·
아· 쟤가 걔구나·
생고기 먹이고 토하면 주워 먹게 한다는·
인제 보니 견포희의 복수 혈전이었다·
그럼 그냥 즐기게 둬야지
견포희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늘어난 악업이 오잉?
청의 눈앞에서 견포희의 악업이 올랐다·
–149에서 –150으로·
이상하다?
어제 분명 –145까지 내려놨는데?
왜 또 백오십따리가 됐지?
그때였다·
대가리를 박은 채 덜덜 떨어대던 천 씨 여인이 중심을 잃고 우당탕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마에 동그랗게 배긴 검푸른 멍에 청이 킥 웃음을 터뜨렸다·
“천 사매? 괜찮아? 이걸로 다섯 번 맞지?”
“헉 아니 아니에요·”
“거짓말하면 못 써· 나쁜 년이야·”
견소희가 비녀를 하나 뽑아 던졌다·
어설픈 동작이긴 해도 나름 요령이 담겼다·
비녀가 천 사매의 허벅지에 콕·
“꺄악!”
“엥? 바람 새는 소리? 사저가 손수 교육을 베푸는데 소리 내기가 있기 없기?”
“죄 죄송···”
“다 긴장을 안 해서 그래· 천 사매가 예전에 가르쳐 줬잖아· 처맞으면 긴장을 할 거라고·”
벌떡 일어난 견포희가 천 씨 여인의 머리채를 낚아채고는 발을 재게 놀렸다·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고 퍽퍽 걷어차는 품이 아주 야무졌다·
천 사매가 흐느끼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 맞아· 천 사매가 맨날 말했잖아· 죄송하면 다냐고· 그런데 죄송한 게 다가 아니면 대체 뭐야?”
“잘못했어요··· 끄흡···”
“천 사매· 사저가 지금 물었잖니? 환희궁이 웃기니? 사저가 아주 좆 아니 성기로 보여?”
“잘못 잘못했어요! 사저! 용서해 주세요!”
천 씨 여인이 아예 파리처럼 싹싹 빌었다·
그러자 견포희의 악업이 깎였다·
-149·
청이 눈을 빛냈다·
이번엔 떨어졌네? 뭐가 다르지?
왜 똑같이 즐기는데도 오르락 내리락···
어? 그건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청이 손가락으로 한 여인을 겨눴다·
“사저사저· 쟤 눈깔을 이상하게 뜨는데요·”
“어!? 쟤가 눈을 어떻게 떴는데?”
“봐봐 지금도 꼴아보잖아요· 선배님한테 막 불손한 눈빛 쏘고 그래도 돼나? 아주 사저가 만만해서 그런 게 아닐까?”
“아니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진 사매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었지?”
“히익···!”
“진 사매? 벗어야지?”
견포희가 단도를 꺼내들며 말했다·
아· 그림이란 게 그쪽이구나?
청이 이해했다·
—-
복수 혈전이 끝났다·
어설프게 악인을 건드려서 오히려 독이 오르면 악업이 오르는 것 같았다·
나쁜 놈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들어서?
그런 식의 판정으로 보였다·
같은 의미에서 악인의 마음을 부수고 꺾는 행위는 선업이 쌓인다고 봐야 했다·
그러면 선업의 조건은 앞으로의 악행을 막는 데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면 장명이 때도 임무창 새끼가···
아 근데 꼬맹이는 편하게 지내고 있겠지?
나는 이렇게 생고생을 하고 있는데····
왜?
왜 나만?
생각해보니 화나네?
청이 의식의 흐름으로 분노했다·
환희궁도의 반절은 초점 없이 널브러져 숨만 쉬고 나머지는 아직 눈빛이 살았다·
열도 받겠다 나도 하나만 가지고 놀아야지·
어 느 것 을 고 를 까 요·
청이 화풀이 대상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견포희가 청을 덥썩 안아 들었다·
편안한 승차감 아니 승악인감이었다·
받침대로서의 사명에도 많이 익숙해진 모양·
받침대가 청에게 말했다·
“사매! 배고프지!? 점심 먹으러 가자!”
점심! 청의 살기가 곧장 사그라들었다·
밥은 중대 사항이기 때문이었다·
청에게는 그랬다·
받침대 2호는 다른 걸 더 좋아하지 않았나?
궁금해진 청이 물었다·
“사저 이번엔 그 마무리? 안 해요?”
“어? 그럼 안 되지· 난 사저잖아?”
사저랑 마무리랑 무슨 상관이지?
청이 다시 물었다·
“사저인데 왜요?”
“도전은 후배가 하는 거잖아· 선배들은 대신 후배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거고·”
“아· 그런 규칙이구나·”
하기야·
선배라고 후배를 막 잡아먹어도 된다?
결국 제일 높은 한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한 규칙이겠지·
그런데 이 꼴을 하고서 문파라고 할 수 있나?
그냥 파탄이 난 콩가루 집단이지·
청은 문득 신녀문이 무척 그리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더더욱 그리워졌다·
오늘의 점심은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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