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3
“천주만독수? 독공이에요?”
청이 잽싸게 무공창을 호출했다·
천 주 만 독 수· 찾아줘·
그러자 우아한 보라색 테두리가 나타났다·
“천주만독수란···”
천주만독의 주는 거미 주를 썼다·
일천의 독거미가 가진 모든 독이라는 뜻이다·
해독제를 미리 먹은 후 독거미에게 손가락을 물리는 무식한 수련으로도 유명한 독공이었다·
그런데 문득 지나지는 생각이 하나·
분명 공략글에 독공은 쓰레기라 그랬는데?
공략글 덕분에 여태껏 살아남았다·
당신께서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네 경지가 나이치고는 경이로운 수준이나 상대할 적은 많고 강대하기까지 하지· 독보다 좋은 수단이 있나?”
하지만 설가놈도 허튼 소리를 하지 않았다·
청이 중원에서 만난 가장 위대한 지성이었다·
청이 그 말에 또 흔들렸다·
또 이렇게 들어보니 솔깃한 소리였다·
하기야 게임 내에서나 독이 약하지 현실에서 독만큼 강력한 게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완전히 게임 속 같지는 않으니 원주민의 의견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긴 언제 독거미 한 마리씩 모으고 있을 텐가? 그냥 자네에게 누가 비급 한 권 준다고 하면 그냥 대정선공 달라고 하게· 자네는 독공보다 그게 더 어울리겠어·”
“대정선공···”
이 역시 보라색 내공심법이었다·
청은 모르지만 세상 무림인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는 무공이기도 했다·
정신을 맑게 하고 심마로부터 보호하는 정심멸마의 정심이 세상 그 어떤 무공보다도 청정하기로 이름이 높은 신공이었다·
다만 ‘무공 하나 주면 뭐 배울래’ 놀이에서 대정선공은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황당무계한 상상으로 망상에나 빠지지 말고 정신 좀 차리라는 뜻이었다·
물론 진심도 조금 섞였다·
이리 살업을 계속 쌓았다간 정파의 대마두가 세상 나쁜 놈들 다 썰어버리겠다고 눈이 돌아가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설가놈의 선택은 대정선공이다?”
“그래· 당장 익히도록· 누가 준다면 말이네·”
청은 뭐든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비꼬기 같은 고급스러운 기술이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역근세수경은 효과를 보려면 오래 걸리는데 대정선공은 바로 볼 수 있다 이거죠?”
청이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다·
설가놈이 딱한 눈빛으로 청을 보았다·
친구가 생각보다 더 무식한 놈이었구나 하는 연민이 담긴 눈초리였다·
“대정선공은 바른 마음을 지켜주는 신공일세· 헛된 망상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뜻이지·”
“아씨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방금 말해주지 않았나? 그리고 자네가 얼마나 무지한지 먼저 알려주었어야 내가 그 수준에 맞춰주지 않았겠나·”
무식한 년이라는 소리를 어렵게 말했다·
딱히 할 말은 없었던 청이 인상만 찌푸렸다·
역시 설가놈· 만만치 않은 놈이로군·
할 말이 궁하면?
말을 돌리면 되다·
“그런데 소녀환희공을 익히고 싶다고 했죠? 그거 사내가 익혀도 돼요?”
“도가의 정통한 방중술은 본래 남녀를 가리지 않는 법이네· 어디서 배웠다고 당당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알기로 몸 안의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준다고 하니 이 몸뚱이도 좀 치료가 되지 않을까 했지·”
“그렇게 불편해요?”
설가놈이 조용히 제 머리를 가리켰다·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축축했다·
“아·”
청이 별 의미없는 소리 냈다·
그러자 설가놈이 그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보다도 좆에도 감각이 없다· 죽으면 사리가 나올 지경이지·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할 수 있겠군·”
“아· 저런·”
청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이럴수가!
설가놈이 고자였다니!
“그럼 혼자서도 안 돼요?”
청이 어설프게 쥔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그러자 설가놈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 줄 수 없나? 좆은 글렀고 정신적으로나 좀 즐거우려 해도 도대체 통하지가 않는군·”
“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다?
어쩐지 아저씨 성희롱을 툭툭 던진다 싶더니·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고자의 담담한 고백에 마음이 아렸다·
차라리 울분을 토하면 몰라 이미 초연하니 신세를 받아들인 것 같은 체념이었다·
한때 사나이였던 청이다·
그 슬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설가놈은 훌륭한 조력자였다·
죽일 놈도 골라주고 좋은 조언도 해 주고·
“그럼 구결 불러줄 테니까 잘 들어요·”
“뭐? 잠깐·”
“자 구결 들어갑니다· 상생지도위락인지상정 즉애궁창비락위지쾌락언야운우지락· 이는 그러니까 사람이 상생의 도리를 즐거움으로 누리니 그 사랑이···”
뭐라 말하려던 설가놈이 흘러나오는 구결에 급히 입을 다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구결에 뜻풀이까지 척척 나오니 본래 머리가 좋은 설가놈이 팍팍 머리에 새겼다·
설가놈은 딱 세 번 만에 구결을 외웠다·
아빠 다리를 하고 운기에 들은 것이 그 증거였다·
청이 중원의 위대한 지성이라고 인정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당분간은 오지 말게·”
“뭐야요? 지금 뽑아먹을 거 다 뽑아드셨다?”
“그게 아닐세· 나도 모처럼 기연을 좀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청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고자 탈출을 위해 애쓰겠다는데 거기 대고 뭐라고 하기 민망하기도 했다·
모처럼 가르쳐 줬으니 익힐 시간도 좀 줘야 맞기도 하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청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설가놈이 본론을 꺼냈다·
“이참에 자네도 한 일주일만 쉬게· 악인참도 좋지만 차분히 얻을 것을 정리하는 시간을 좀 갖는 편이 좋겠군· 자네 지금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야·”
—-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 환희궁에서 청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이제는 제자동 꼭대기 막내 방에 사는 인간이 생각보다 더 고수라는 것을 다들 안다·
신당 본궁의 무녀가 설설 기며 수발을 든다는 소문도 있었다·
환희궁 제자를 쓰레기처럼 바라보는 치들이 본궁의 무녀들이었다· 더러운 탕녀니 어쩌니 아주 깔끔이나 떠는 망할 년들이 아니던가·
소문의 속성이 그렇듯이 누가 보았다더라곤 하는데 누가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 선생이 알면 놀랄 소문이었다·
그 굴욕의 현장 수업 드리는 현장에는 청과 강 선생 그리고 견습무녀 겸 시녀인 소영 뿐·
세상에 혼령이라도 존재하여 그 광경을 보고 소문을 냈단 말인가 하고·
참고로 청은 애초에 관심이 없어서 굳이 강 선생의 헌신적인 교육열에 대해 홍보하지도 않았다·
거기에 근래에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하더니만 매일매일 너 위에서 내 아래로 집합을 시키는 견포희의 뒷배이기도 했다·
그러니 환희궁 제자들이 청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않았다·
그래도 다리가 병신이라 다행이라고·
가까이 안 가면 물릴 일도 없다·
거의 맹견에 준하는 취급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청의 일주일은 빡빡했다·
정보가 없다고 해서 죽일 놈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머리 위에 얼마나 죽일 놈인지 보이지 않는가·
사실 개중에서도 좀 쓸모 있는 악인을 효율적으로 죽이려고 정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뭐 악업 보고 고문해다 무공만 뽑아 죽이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최근 일주일은 혼자 밤놀이 나갔다가 복귀하면 피곤해서 푹 잤다·
참 재미있었지만 사실 탈출용 무공 얻기에는 대실패였다·
그냥 잡다한 희고 파란 것들만 잔뜩·
좌표를 알고 파는 것과 대충 휘적휘적 모래나 휘젓는 행동의 차이점이었다·
그렇게 자고 나서 일어나면 점심쯤 되었다·
받침대 2호와 점심을 먹고 간혹 1호가 찾아오면 1호와 먹고·
오후에는 강 선생에게 특별 안마 시술과 간식 조공을 받았다·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서 좀 조절했더니 강 선생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한결 친절하게 구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 받침대 2호와 외식을 나갔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휴식 겸 자유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자유 시간에는 견포희의 탕선탈의무를 구경했다·
탕선탈의무는 환희궁의 이대 제자들이 배우는 주력 합격술이고 견포희 역시 이대에 올라 그 비급 필사본을 전달받은 것이다·
청은 몰랐지만 환희궁의 제자들이 함께 펼치는 탕선탈의무의 군무는 상당히 악랄한 합격술로 강호에 이름이 높았다·
정종의 맥을 이은 구파의 제자들이란 여인에 대한 내성이 약한 편이었다·
미모의 여인들이 사라락 옷 벗으며 춤을 추는 고급 사술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는·
네 번에 걸친 정마대전에서 그에 갈려나간 혹은 빨아먹힌 정파의 제자들이 수두룩했다·
마땅히 놀거리 없는 미개 중원이다·
청이 구경거리 삼아 불러다 수련을 시켰다·
그런데 동작이 어설퍼 뚝뚝 끊어지고 심지어 옷 벗다 팔다리 끼고 넘어지고 아주 난장판이었다·
답답해진 청이 무공창으로 일 성 찍어버리고 구결과 동작을 익혀 이리저리 훈수를 놓았다·
덕분에 받침대 2호가 가진 춤 재능이 파멸적인 수준이라는 점은 잘 알았다·
오히려 훈수와 구경이 수련으로 적용된 청의 성취만 팍팍 늘었다·
일주일 만에 벌써 삼성의 성취였다·
“아니 사저· 오 무에는 좀 더 야리야리하게 살랑살랑 이게 안 돼? 살랑살랑?”
청의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깨로부터 튕겨 팔꿈치와 손목을 지나 손끝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치명적인 손기술이었다·
견포희가 눈치를 보며 나름 동작을 따라했다·
“어 살랑살랑···· 이렇게?”
굳이 분류하자면 각기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뭐지? 무엇을 의미하는 동작이지?
심장을 터뜨리겠다는 뜻인가?
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몇 번을 보여줘도 이걸 못하네·
유혹은 개뿔 무슨 당랑권을 펼치고 있어?
탈의 무용 한 번 구경하는 게 이리 힘든가?
에잉 받침대 2호 이건 그냥 못 써먹겠네·
일대 제자쯤 되면 잘 추지 않을까?
이딴 거 말고 대신 주워올까?
마무리 구경하는 외엔 뭐 그냥 쓸모도 없고·
심지어 마무리도 매번 똑같아서 벌써 질렸다·
대충 올라타더니 허리 좀 흔들다가 깔린 애가 숨넘어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이리저리 요구를 좀 해 봐도 그 자세 말고는 할 줄 모른다고 하고·
어차피 밥은 받침대 1호가 더 잘 사주는데·
받침대가 둘이나 필요할까?
“어 사매· 그· 나 열심히 할 테니까···”
“이미 열심의 문제가 아닌데? 재능이 재능이라고 해야 하나? 파멸적으로 없는 것도 재능이라고 할 수 있으면야·”
견포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이 가늘게 떨리고 어깨가 간혹 들썩거린다·
청이 인상을 팍 구겼다·
뭐야 울어?
뭔데 왜 남의 방 한가운데서 질질 짜?
눈물 짜려면 지 방에 가서 하든가·
이러면 나만 나쁜 놈 된 것 같잖아·
게다가 내가 뭐 틀린 말이라도 했나?
못하니까 못한다고 하지 잘한다 잘한다 아유 실력이 아주 쑥쑥 자란다 부추겨봐야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닌가?
별 쓸모도 없는 게 못된 신파만 배워서는·
청이 견포희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항상 고마운 숫자가 보였다·
-136· 아직 죽여도 되긴 한데·
저건 뭐 이제 별 쓸모도 없으니까 선업이나 쌓게 그냥·
문득 청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냥 뭐?
“웁”
갑자기 속이 뒤집히며 저녁으로 먹은 것들이 들어간 방향으로 대탈줄을 시도했다·
고수의 능력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반쯤 녹은 음식물의 대탈출은 혁명과 같은 기세로 식도를 긁으며 창대한 분출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사매? 사매!? 괜찮아!?”
“나 웁 등 등·”
그 말에 견포희가 청의 등을 건드렸다·
다섯 살배기 아직 유치원도 못 간 꼬맹이보다 못한 힘이었다·
차라리 쓸던가 팍팍 두드리던가 하나만 하지·
무슨 사람 등짝이 연두부쯤 되는 줄 아나·
좀 세게 친다고 터지는 것도 아닌데·
때는 이때다 하고 못된 사매 등짝을 두들겨 팰 좋은 명분 아닌가?
뭐 얼마나 연약한 사람 돌본다고·
결국 기껏 포식한 저녁을 모조리 꺼내놓고 나서야 역류가 멈췄다·
그나마도 든 게 없으니 멈췄지 위장이 덜덜 떨리는 것이 아· 이거 위경련 같은데·
“사매? 이제 좀 괜찮아?”
“안 괜찮아요··· 나 물 좀·”
“아 잠깐만· 여기·”
견포희가 청의 입가로 물잔을 들이밀었다·
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이리 줘요· 물까지 먹여주나·”
“아·”
견포희가 물잔을 건넸다·
청이 빙천수라마기를 일으켜 냉장을 시도했다·
잠시 후 잔의 표면에 서리가 앉았다·
벌컥벌컥 한 방에 들이키니 시친 찬물이 속을 찌르르 울리며 파고들었다·
혼미했던 정신이 좀 돌아온다·
그러자 저녁밥 대분화의 여파가 밀려들었다·
코 안쪽으로 들어간 위액과 건더기가 머리통 전체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쓰읍 죽겠네···”
“사매? 괜찮아?”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들은 것 같은데요·”
“어···· 그럼· 음· 괜찮은 거야?”
“오늘은 좀 쉬어야겠어요· 사저도 오늘 고생했으니까 좀 쉬어요·”
받침대 2호가 제대로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청이 깊이 반성했다·
그래 애가 별로 착하진 않고 무능한 데에다 멍청하고 별로 도움이 안 될 뿐이지 그래도 이렇게 마음을 써 주는데·
아주 미쳐가지고는·
설가놈이 쉬랄 때 좀 쉴걸·
내가 왜 밤마다 이렇게 부지런을 떨었지?
미안해진 청이 한 마디 덧붙였다·
“내일부턴 같이 연습해요· 그럼 사저도 좀 늘겠죠 뭐· 원래 군무라면서·”
“어!? 어? 응!”
견포희가 다시 해맑음 상태로 전환되었다·
착하진 않고 무능하고 멍청하고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데다가 단순함을 추가해야 할 판이다·
“몸 안 좋으면 쉬어야지· 저건 사매들 불러다 시켜놓을게· 옷에도 튀었지? 옷도 벗어놓고·”
그러면서도 자기가 치우겠다는 소리는 안 했다·
왜냐하면 별로 안 착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자신만 아니면 되는 청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견포희가 떠나고 혼자 남은 방에서 청이 무공창을 불러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즐거운 한 주의 시작 월요일(火曜日 / Tuesday)입니다·
기나긴 주말을 기다리며 힘차게 인생 역경을 헤쳐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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