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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apter 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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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와 무슨 관계냐·

그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지?’

현재 묵연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떠한가·
눈이 커졌을까? 아니면 눈매를 좁혔을까· 그도 아니라면 마른침을 삼켰나?

혹은 식은땀은 흐르고 있을까·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한다· 그걸 하나하나 확인했고·

그렇게 일 초가 흘렀다·

“그게 어떤 의미의 말씀이십니까?”

대답은 늦지 않았다· 
연기는 더럽게 못한다고 욕을 그리 처먹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표정이었다·

그런 내 말을 들은 묵연이 말한다·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더욱이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눈을 살짝 좁혔다· 마치 불편하다는 듯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어르신께서 제게 그런 걸 물으시는 연유가 무엇인지요·”

의심하는 건가·

의심한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짜증을 내비치면서도 속으론 생각을 반복했다·

그렇게 온갖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

“허허· 이런, 늙은이가 성왕의 심기를 많이 거스른 모양입니다·”

“안 거슬렸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하면 사과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말을 뱉으면서도 묵연의 표정엔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속이 다소 더부룩하다·

‘올 걸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하니 더 귀찮은 양반이네·’

지난 습격에 있어 기반을 다질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봤던 건 다름이 아니다·
바로 ‘묵연’ 저 노인의 존재였다·

은퇴한 지 십수 년이 된 양반·
아마 다시 맹으로 복귀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았을 게 보인다·

예상하기로 습격 직후 곧장 도착했겠지·

만일 저 계속 양반이 맹에 있었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다면, 그렇게 쉽게 안 당했겠지·’

아무리 상황을 쉼 없이 엮고 백날 개지랄을 떨어도 저 양반이 있었다면 달리 진행했을 일이다·

맹에 모여든 이들의 총합적인 경지?
그들이 보유하고 있을 세력의 힘?

하나도 두렵지 않다·
나는 그런 놈들보다 저런 인간이 더 무서웠다·

‘직접 봤으니 더 그렇지·’

초인적인 존재 백 명이 날뛰는 것보다 흐름을 읽는 인간이 훨씬 두렵다·
전생에 천유랑아가 중원을 어떻게 굴려 먹는지 봤던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다·

하여 작전을 짤 때도 명시해놨던 부분이다·

무림맹에 묵연이라는 책사가 없을 것·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고· 실제로 그렇기에 계획이 성공했다·

민심이 뒤흔들려 맹의 기반이 흔들리게 만들었고·
그 뒤흔들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진동이 될 것이다·
걷잡을 수 없도록 거대해지겠지·

분명 그럴 상황이지만,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나의 계획이 들어 먹혔을 뿐· 이후의 일이 더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양반을 잘 살펴야 해·’

나는 묵연에 관해 더 확실히 알아야 했다·

“듣기로 천마라는 이가 사라지기 전, 성왕과 잠시 담화를 나눴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담화까진 아니고· 단순히 제 이름을 물어 대답해주었을 뿐입니다· 혹, 그게 문제라도 되는 겁니까?”

“허허· 아닙니다· 문제라니요···· 이는 그저 한 노인의 노망이라 봐주십시오·”

“노망?”

“성왕께선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대뜸 폭언과 엇비슷한 말을 꺼내온다·

“성왕께서 지금 이룩한 경지는 중원 역사상 아마 없었던 일일겁니다· 기록되기로 이전에 가장 화경에 빨리 닿은 이가 금천권왕일 테니까요·”

금천권왕 연일천· 혈마를 막아낸 당대 천하제일인·

그가 화경에 닿은 나이 스물 다섯, 그게 이전 역사상 가장 어린 화경 진입이었다·
그 뒤로 누구도 깨지 못한 기록을 깬 것이다·

말을 듣고 고개를 까딱인다·

“어차피 최연소 화경은 신룡이지 않습니까·”

맹이 입증한 이는 다른 이가 아니냐· 그런 의미로 한 말이지만·

“글쎄요·무림맹은 그렇게 말하고 있으나· 제가 보기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성왕께서도 알고 계신 부분으로 보입니다·”

“···”

묵연의 말에 즉시 속으로 혀를 차야 했다·
저 양반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맹의 공식 입장은 입장이고 그보다 내가 먼저 닿았을 것이라는 확신·
묵연의 눈엔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물론, 솔직히 이 부분은 어찌 되든 상관 없는 일이니 넘어갈 수 있는데·

“그래서, 그게 제가 천마와 관련 있다 보시는 이유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무인의 깨달음과 노력에 관해 잘 모르나· 그저 성왕께서 지닌 가능성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면····”

“심지어 그런 가능성을 지녔음에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지난날 참아내고 계셨을뿐더러· 그리 오래 참고 계셨음에도 하남이 위기에 처하니 끝내 참았던 힘을 꺼내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 되셨지요·”

“···”

대화가 오갈수록 내 눈매가 조금씩 찌푸려지는 게 느껴진다·

“습격을 막아내고, 마물을 잡아내며 마지막으로 사술을 끊어내 맹주와 다른 이들을 구하기까지···, 그날의 성왕께서 행한 일은 정말 영웅이라 불리기 충분한 일들이었습니다· 예···정말·”

잠깐의 침묵이 이르고, 묵연이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누군가 성왕을 영웅으로 만들고자 한 게 아니었나 싶을 만큼···· 말이지요·”

그 말을 듣고 확신했다·

그렇구나·

‘저 노인네·’

날 의심하고 있다·

이는 내가 행한 업적들이 너무 잘 들어맞은 탓이다· 웃음 뒤에 숨은 눈과 감춘 척 드러낸 어투에 확연히 담겨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네가 봐도 이상하지 않느냐·

이룩한 업적은 정말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아니면,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업적인 건 아닌가·

우연이라 하기엔 이질적이기 짝이 없다·

그러니 난 너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 의미가 그득히 느껴지는 말이었다·

‘이것 참·’

진짜 쉽지 않네· 역시 이런 상황은 나랑 맞지 않다· 
지금도 보아라· 당장 앞에 있는 노인의 목을 꺾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머리 쓰는 건 언제나 귀찮다·

몸으로 때우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뭘 어떻게 해· 싫어도 해야지 뭘·

“···하하·”

시작은 헛웃음·
당황스럽다는 기색을 풍기진 않았다· 지금은 가장 잘하는 걸 하는 게 맞았다·

“어르신·”

“예· 성왕·”

“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어르신이 보시기에 제가 이 무례를 언제까지 받아드려야 하는 겁니까?”

“···”

말을 뱉으며 표정을 즉시 일그렸다·

연기는 몰라도 화를 내는 건 자신 있으니 짜증을 가득 담아 감정을 표출했다·

“개고생해가며 살려놨더니만 돌아오는 게 이딴 취급이라면,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성왕·”

“계속 말을 이어가실 거라면,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

“그래도 하실 거라면 이어서 하시지요·”

잔뜩 치켜뜬 눈매로 묵연을 노려본다· 
묵연은 어느새 웃음을 지워낸 눈으로 날 마주보고 있었고 우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죄송합니다·”

먼저 고개를 숙인 건 묵연이었다·

“잔걱정이 많은 늙은이의 헛짓입니다· 기분을 상하게 해드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말을 듣지만, 의심에 기분이 연신 나쁘다는 기운을 보여주고 찡그린 표정을 다시 풀지 않았다·

다만, 그 상태로 일으킨 몸을 다시 주저앉혀야 했다·

애당초 취조의 개념으로 불려온 입장이다·
일청검이 제안이니 뭐니 쓸데없는 말을 내뱉기는 했다만·

여긴 습격과 관련된 이들을 불러다 확인하는 자리· 나 뿐 아니라 여럿이 오갈 예정인 걸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의심 받았다고 화만 내는 건 되레 의심만 돋굴 뿐,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사과는 받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마음 같아선 탁상이고 뭐고 엎고 나가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아직이다·’

얘기는 끝난 듯 보이나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노인네의 눈빛은 여전하다는 것을·

‘나만 의심하는 건 아닐 거야·’

분명 떠올린 이들이 몇 더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다 저런 눈빛을 보여줄 걸 알고 있거늘·

‘쯧·’

보고 있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감각이다· 

전생에 천유랑아와 단둘이 있을 때의 느낌· 그때 느껴지던 비릿한 감각과 비슷했다·

나도 모르게 말에 휩쓸려 잘못 내뱉게 될까 봐 극도로 기감을 높여야 했고· 
알 수 없는 존재감에 갑갑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기라곤 거의 안 느껴지거늘 존재감에서 짓눌릴 것 같다는 뜻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지금 죽일까?’

당장 코앞에 있는 묵연·
곁에 검제가 있다고 한들, 이 거리라면 노인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

하면, 손을 뻗어 목을 꺾어버릴까?

‘그렇게 해서, 검제의 손을 피할 수 있다면·’

분명 들키겠지· 성공하면 앞으로의 계획이 모조리 바뀌게 될 일이다· 

아직 무림맹에서의 계획은 더 있었다· 봉순이를 써먹을 일도 있었고 이것저것 만져봐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걸 다 따져도 저 노인을 죽이는 게 이득일 수 있어·’

그만큼 귀찮은 존재를 당장 처리할 수 있었으니, 정말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해볼까? 진심으로 고민을 거듭한 다음·

‘아니야···· 아직이야·’

끝내 내가 선택한 건 참아내는 것이었다·
너무 잃을 게 많다· 죽이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그리 판단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그 순간·

“성왕·”

“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묵연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염치없지만, 성왕께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갑자기 말입니까?”

그 말에 당황한 듯 되물었다·

“취조는 끝난 건지요·”

“아, 그건 아까의 대화로 충분합니다·”

벌써 끝이라고?
몇 마디 나눈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인가 싶어 묘한 기색을 띠던 중· 묵연은 품에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스윽·

맹의 문장이 박힌 서찰 한 장이었다·

“혹, 직전에 청룡대주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계신지요·”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맹에서 새로 창설할 거라는 대대·
그곳의 대주로 와달라는 제안이라 했었지·

“이 또한 그와 비슷한 얘기입니다·”

묵연의 말에 눈을 살짝 좁혔다·

“그건 아까도 대답했었는데요·”

안 하겠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던 부분이며, 묵연 또한 들었을 것이다·
한데 다시 말을 꺼낸다고?
심지어 이 상황에서?

같잖은 의심을 받았다고 잔뜩 짜증낸 다음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제안을 또 하다니·
무슨 의도일까·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전의 무례에 관해선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이번 말씀은 청룡대주가 했던 것과 같으면서도 상당히 다르다는 걸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이는···· 제안 따위가 아닌, 무림맹의 이름으로 성왕께 정중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하·”

노인의 말에 즉시 비웃음을 머금었다·

제안이 아닌 부탁·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의 무림맹엔 성왕이 필요합니다· 하니, 부디 손을 빌려주십시오·”

쓸데없이 당당하고 또 뻔뻔하다·
설마 저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시원한 느낌은 있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낫지·’

일청검보단 백배 나은 태도다·

지금 무림맹은 나를 필요로 한다· 그건 진즉 알고 있던 사실이다·

정확히는 내가 필요하다기보단, 무림맹이 만들어준 내 이름값이 필요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었다·

‘지금 무림맹은 잔뜩 흔들리고 있다·’

파악할 시간이 없어 확실한 건 아니어도 상당히 곤욕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민심도 그렇지만, 여기서 가장 실질적인 문제는·

‘상단주들의 이탈·’

지금껏 무림맹에 후원하고 있을 상단이 발을 빼기 시작했을 거라는 것·

당연한 일이다· 민심을 잃은 무림맹에 무얼 위해 후원하겠나·
상단은 오로지 돈을 보고 움직이는 이들이다·

그들이 맹에 후원을 거듭하던 이유는 안전을 위함도 있으나, 결국 목적은 돈이라는 뜻이다·

무림맹에 직속 후원을 하는 상단·

거기서 오는 안정감과 이름값·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이 있을 일이건만·

지금 무림맹은 민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으니, 더 이상 무림맹에 후원하는 건 위험한 선택이었고·

그리되니 하나둘씩 상단이 손을 빼고 있을 것이며·
후원이 끊어지게 되면 맹을 이루고 있던 중심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여러 가지로 곤란해진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현재 무림맹은 이 부분을 빨리 처리해야 했고· 늦기 전에 빨리 민심을 되찾아야 했다·

그래서다·

새로운 대대를 창설하며 날 앉히려는 이유·
대주가 셋이나 죽은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게 가장 빨리 민심을 되찾을 수단이니까·’

성왕이라는 이름값·
거기서 오는 찬양과 사람들의 호응·

무림맹은 그걸 필요로 했다·

‘하남을 구한 영웅이 맹의 대주로 일임한다는 것·’

맹을 불신하던 이들을 붙잡을 수단이기도 했고·
나로 하여금 상단주들의 발길을 되돌리려는 수작이기도 했다·

누가보면 나를 올린다고 민심이 돌아올 거라 믿냐며 오만하다 할 수 있으나·

‘객관적으로 그래·’

원래도 얼추 예상하던 일인데 직전에 현에서 사람들에게 느낀 부분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입지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걸 말이다·

나 또한 그걸 뻔히 알고 있기에 일청검에게 말한 것이다·

너희가 감히 내게 제안할 주제가 되느냐고·
주제에 고개가 너무 뻣뻣하다고·

그런 의미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이리 언급할 줄이야·’

묵연은 그걸 알면서도 대놓고 내게 말을 꺼내는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노인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부탁하는 상황치고 되게 이상한 거 알고 계시지요?”

할 거면 아까 대화하기 전에 하던가, 실컷 기 싸움해놓고 지금 부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내 말에 묵연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전의 말은 본인의 개인적인 입장이고· 지금의 말은 맹의 입장입니다·”

“서로 다르다 이 말인가요·”

“맞습니다·”

결국, 저 노인네는 날 의심하긴 하는데 무림맹으로서 보기엔 내가 필요하다는 건가·

참 어이없는 말이었다·

‘이건 뭐· 속이려고 드는 것보단 낫다고 해야 할지· 오히려 개 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때·

“이건 성왕께서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하여 준비한 조건들입니다·”

한껏 어처구니없어하는 나를 뒤로하고, 묵연이 앞에 서찰을 내게 들이민다·

“거절하시더라도 부디 먼저 읽어는 봐주시길 간청드립니다·”

“···”

기분 나쁜 티를 내며 찢어버릴까?
그게 낫겠다 싶으면서도 손을 뻗어 서찰을 살폈다·

말마따나 찢어도 읽어는 보고 찢자는 마음이었다·

근데·

“음?”

많아 봐야 다섯 줄·
글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읽어갈수록 내 눈이 커진다·

“···”

그렇게 모든 글을 읽은 직후, 나는 서찰을 찢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올려 묵연을 쳐다봤다·

내 시선엔 이게 정말 맞느냐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더 원하시는 바가 있다면 추가할 용의 또한 있습니다·”

“이야·”

웃음이 절로 나온다· 다만, 아까 나온 헛웃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애초에 이런 조건으로 가져와 놓고 청룡대주는 그런 식으로 나왔다는 건가·

‘아니면, 이 노인네의 계획이었을까·’
 
의문이 계속 떠오르지나 지금은 상관없었다·
뭐든 상관없을 만큼 대단한 조건이었다·

직전에 느껴지던 짜증도 더부룩함도 한 번에 사라질 만큼의 조건·
이에 나는 잡고 있던 서찰을 접어 품속에 집어넣었다·

“조금 생각해보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선택은 보류였고·
그렇게 담화는 끝이 났다·

******************

얘기가 끝난 직후· 구양천이 떠난 방안·
아직 나가지 않은 묵연은 앞에 놓인 차를 조심히 따르고 있다·

그의 뒤에선 검제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쿨럭-!”

문득 묵연이 거칠게 기침을 토해냈다·
천으로 급히 입을 틀어막는데· 그럼에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계속 기침을 반복하고는·

“후우····”

간신히 멈추자 천을 떼어낸다·
입을 막고 있던 천에는 붉은 핏물이 그득히 묻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걸 본 검제가 덤덤히 말을 물었고, 묵연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단 낫습니다·”

“···”

더 이상 뭔가를 묻지는 않았다· 자신이 물어봐야 달라질 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차를 마시는 묵연을 지켜보던 검제·
그렇게 고요한 분위기가 지속되던 와중, 검제가 입을 여는데·

“어땠습니까·”

주어가 빠진 물음· 하지만 묵연은 그가 뭘 묻는지 알고 있었다·

“검제께서 보시기엔 어떠셨는지요·”

“···”

묵연은 말을 되물었고· 물음을 들은 검제는 잠시 생각하고선 대답을 내놓았다·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보기에는· 묵연은 그 말에 집중했다·
그걸 알고 있다는 듯, 검제 또한 뒤이어 말을 덧붙인다·

“하나, 무언가 미묘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묵연이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본능적인 감일까· 검제는 이런 면에서 항상 감이 뛰어난 인물이다·

묵연 또한 그의 대답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방금까지 대화하던 인물· 성왕이라 불리며 최연소 왕급이 된 청년·

산서의 구양천·

그 젊은이를 떠올리며 묵연이 말한다·

“검제·”

“예·”

“제 대답이 궁금하십니까?”

“예·”

구양천· 그를 생각하며 묵연이 웃음을 지었다·

그와의 대화는 색달랐다·

자신이 손주를 봤다면 그보다 어릴 나이·
유성의 세대 중에서도 어린 측에 들 나이거늘, 묵연은 그와 얘기하며 특이한 감상을 떠올렸다·

‘다르다·’

후기지수는 물론, 그가 상대했던 무인 중에서도 특별하다·

젊은 무인이 가진 호전적인 기색은 물론, 열정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되레 차갑고 섬뜩한 눈동자였다· 
 
동시에 어투와 말버릇은 정파치고는 심히 폭력적이다· 난폭하며 수틀리면 무엇이든 부술 것 같았다·
오만함이 그득히 묻어있는 한편·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날카롭다·’

그런 말 속에 조금의 수도 보이지 않으려는 철저함이 있었고·
보여지는 난폭함은 그걸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였다·

상황 판단은 재빠르고 자신의 눈을 보면서도 주변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나무를 보는 척 숲을 살피고 있다는 의미다·

이 말인즉슨, 그의 모습은 전부 철저한 계산을 기반으로 한 모습이란 의미다·

‘재밌다·’

하여 묵연은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지는 느낌이다·

단 몇 마디의 대화· 그걸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청년은 자신과 전혀 달라 보여도 비슷한 인물이라는 것·

‘어쩌면·’

그가 무학의 눈을 뜬 이가 아니었다면, 어떤 사정이었든 붙잡아 제자로 삼았을 것이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지만·

‘아쉽구나·’

정말 아쉽게도 그럴 수 없다·
아무래도 그는 다른 뜻을 지닌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거 아십니까 검제·”

지난 대화를 상세히 떠올린다·

-천마와 어떤 관계십니까·

하남을 습격했다는 천마·
천존의 기습에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고 하는 알 수 없는 존재다·

얼마만큼의 강함을 지녔는지· 세력은 어느 정도 크기인지·

무얼 위해 움직이는 이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 묵연은 구양천에게 천마와의 관계를 물었고·

묵연의 말에 부정을 내뱉으며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그런 구양천의 반응은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성왕은 끝내 부정을 뱉지는 않았습니다·”

묵연은 그런 말속에서도 이질감을 잡아냈다·
몇 번의 물음 속, 그는 마지막까지 천마와 관계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묵연은 그에게는 뭔가 있음을 확신했고·

“그를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어떤 수를 써서든 곁에 두고 지켜봐야겠다· 그리 다짐한다· 

그리고·

“음· 역시·”

맹 바깥을 나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구양천 또한, 뒤돌아 맹 쪽을 보며 생각했다·

“죽여야겠다·”

빠른 시일 내에 묵연을 죽여야겠다고 말이다·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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