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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apter 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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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5

이틀이 흐른 뒤 여느 날·
여느 때와 같은 날씨· 조금씩 만연해진 가을 속 겨울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런 와중, 나는 다소 차분해진 걸음을 옮겨가고 있었다·

참고로 모용희아와는 사건 이후 대화를 못 했다·

찾아가고자 했으나 모용희아가 이를 거절하고 있었고· 어지간히 피하는 것 같아 그녀의 고모인 백련검을 찾아가 말을 청했지만·

[음···· 이건, 나도 어쩔 수가 없는데?]

나이에 비해 철이 훨씬 덜 든 백련검조차 두손 두발 다 든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나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아무래도 진짜 조진 것 같은데·’

단순히 삐친 정도로 그칠 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지금 사태를 타파할 수 있는가· 

상황을 아는 이들은 백이면 백 내 편이 아닐 지경이었으니, 내가 잘못한 건 확실한 부분인데·

‘쯧·’

빌어먹게도 이를 해결하기엔 내게 닥친 상황이 그거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고·

이는 짙은 고민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기도 했다·

조용히 길을 따라 걷는다·

공사가 한창인 현의 거리· 

저번에 그러했듯 피난민들과 상단의 이들이 나서 직접 현을 수리하고 있었고·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대상단 중 두 곳이 붙은 걸로 모자라, 무인들까지 나서 일을 돕고 있었으니, 어찌 느릴 수 있을까·

당장 공사를 시작한 날부터 어제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현을 다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탓에 소음도 상당히 컸건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

시선을 돌려 주변을 쳐다봤다·

날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많다· 

별호가 바뀌게 된 그 순간부터 이렇게 된 일이지만, 어제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이다·

너무나 고요했다·
날 보는 눈빛도, 공기 속 풍겨오는 주변의 분위기조차도·

이를 느끼며 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고개는 다시 돌려 정면을 쳐다봤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날 향해 예를 갖추거나 고개를 조용히 숙이는 이들이 있다·

달려들어 찬양할 때는 언제고 왜 저럴까 의문이 따를 만도 하나·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처리가 끝났습니다·

걷던 중 나히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를 듣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말씀대로 대먹리를 통해 주인님의 재산을 일부 분할 했고· 익명을 유지한 채 나흘 안으로 전달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난날· 야금주와 만년한철을 긁어모아 마련한 재산의 반 틈 이상을 사용했다·

계획하고 있던 지출은 아니다만, 내 입장에선 필요한 일이었다·

‘이 이상은 따라오지 마·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어·’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나히를 멀리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 내 앞으로 누군가 다가온다·

“성왕을 뵙습니다·”

인물은 맹의 인원이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무림맹을 찾아왔다는 뜻이다·

저번처럼 묵연을 보러 온 건 아니었고· 이번엔 개인적인 이유 또한 아니었다·

아, 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이라고 해야 하나?

“모시겠습니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무인은 등을 돌려 움직이고 난 그걸 따라갈 뿐이다·
현이 그러하듯 맹 또한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날 안내하는 무인의 표정은 물론, 보기 드물게 맹 소속 무인에게서 검은색이 엿보였다·

겉옷은 무림맹 공식 도포를 걸쳤으나, 안쪽엔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게 보인다·
이례적인 상황이나 이를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무인이 저런 복장이었다·

별 대화 없이 걷기를 잠시, 한 장소에 날 데려온 무인은 안내가 끝났다는 듯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고 도착한 날 보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오셨소·”

나와 같이 왕급에 올라선 무인· 호왕(虎王) 황보열위였다· 
그는 몸에 붕대를 감고서 도착해 있었는데, 그를 보며 내가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움직일 만은 하오·”

내 물음에 호왕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한다·

그 짧은 반응 안에는 고통을 참는 것 같은 낌새와 어린 무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불편함이 깃들어 있었다·

‘대단한데?’

저 작은 표정으로 이런 걸 느끼게 한다고?
심지어 실제론 별로 안 아픈 양반이 보기엔 더럽게 아파 보이기까지 한다·

벽이 느껴진다· 
내가 가지지 못한 연기의 재능· 호왕은 분명 그걸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호왕과 짧은 담화를 끝낼 즈음, 다른 이들도 내게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

“성왕·”

날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낯선 듯 익숙한 생김새가 보인다· 그런 얼굴을 보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명궁·’

바로 적룡대의 대주이자 중원에 몇 남지 않았다는 궁공의 고수· 명궁 송유였다·
그는 정중한 예를 표하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바쁘실 시기에 맹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와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송유의 말에 머쓱하게 웃음을 머금는다· 
그래, 와야 할 일이다· 다른 이는 몰라도 나는 와야 했다·

“아, 그리고 적룡대주님·”

“예·”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는데·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

뜬금없이 감사 인사를 건네니 명궁의 눈이 커진다·
그는 내가 무얼 떠올리며 말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눈치채고 계셨군요·”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하남에서 그런 활을 쏠 수 있는 건 대주님뿐일 텐데요·”

“···하하····”

내가 명궁에게 고맙다고 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며칠 전 백색 마물과 전투를 벌이던 당시· 위기의 순간 날아든 화살 한 발이 있었다·

강기가 맺힌 화살은 빠르게 쏘아져 마물에게 직격 했고·
그 순간이 만들어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사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화살을 쏠 수 있는 건 내가 알기로 하남에서 한 명뿐·

적룡대주가 그 주인이리라·

“아닙니다····”

하여 감사를 건넸는데 정작 인사를 받은 명궁은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왜 저런 얼굴일까·

그다지 기쁘진 않은 것 같았다·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건가·

대충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 외에도 몇몇 이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송유를 포함한 다른 대주는 물론· 명가의 인물이나 문파의 사람들도 보였다·

따지자면 무투제를 하던 때와 비슷한 수준·
그만큼의 인원이 모여있건만, 분위기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조용하다고 할까·

하기야· 
시끄럽다고 하면 더 이상하겠지·

오늘 같은 날이라면 이런 분위기가 나을 것이다·

현의 길이 그러했듯 유달리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는 내부·
그걸 보며 나 또한 다르지 않다는 듯 호흡을 골랐다·

이렇게 무수한 이들이 모여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금일(今日)은·

맹에서 지난 습격으로 인해 발생한 사상자들을 위한 애도식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

애도식(哀悼式)·

번지르르한 단어 같지만 실상 그리 대단한 걸 하지는 않는다·
그저 슬픔을 공감한다며 수두룩한 인원을 모아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게 끝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그걸 치르는 곳이 다름 아닌 무림맹인만큼 강제적으로 많은 이들이 참석한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맹도 맹이지만 현 시국이 시국이다· 

모두가 사건으로 인해 심상이 엉망일 터이니, 이런 와중 애도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살벌한 눈빛을 받게 될 것이었다·

덕분인지 애도식엔 무투제에서도 못 본 이들이 몇몇 눈에 들어온다·

습격 때 본 적 없는 대주들은 물론이고 상당한 입지를 이룬 이들도 가득하다·

현 검왕인 남궁가의 가주·

그 바로 아래 급인 명가의 인물들과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비롯해·

‘천안·’

소림의 방장인 천안·
그의 모습도 엿보였다·

‘습격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소림의 무인이 참전했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당연한 사실이다· 

하남은 무림맹의 본거지기도 했지만, 엄연히 소림의 땅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 소림에서 나타난 무인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맹에서는 어찌 파악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파악하기로 서른이 넘지 않아·’

기껏 해봐야 서른· 

다른 곳과 비교하면 많은 편이긴 하나 소속된 문인과 소림의 크기를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물며 하남이 본거지인 문파가 서른 명밖에 보내지 않다니·

‘정예들로만 꾸려서 보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잖아·’

의문이 깃든다·

소림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걸까· 
그래도 출전은 했으니 욕은 덜 먹고 있으나 민심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를 소림이 인지하지 못했을까?

‘절대·’

무지렁이들이 가득하다고 한들 이를 모를 리 없다·

당연히 필두마측이 소림에도 수를 써놨다고 하지만, 그래도 빈약한 대처였음은 다르지 않다·

이 말인즉슨·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것·’

소림이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뜻인데·

‘뭐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나히를 시켜 잠입이라도 시도해볼까?

‘아니야· 그러긴 아까워·’

당장 일들이 차고 넘친다·

특히 나히 같은 경우는 할 일이 많은 편인지라 이런 일에 넣기는 애매했다·

차라리 철지선의 머리를 깎아서 던지는 게 나을 지경인데····

‘나쁘지 않은데···?’

문득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여 정말 실행해볼까 싶었지만·

‘···’

곧장 생각을 지워냈다· 
이상한 계획이라서가 아니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겨냈습니다·”

앞에 모인 이들· 그 너머에 엿보이는 무수한 인파까지·
몇 명이 모였는지 셀 수조차 없는 지경·

당장 얼마 전 습격이 있었던지라 너무 많은 인원은 오지 않도록 했다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숫자였다·

한데·

‘이렇게 많이 모였음에도·’

소리라곤 단상 위에 올라간 검선의 목소리뿐· 
다른 소음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두 손을 모아 묵념을 표한다·

애도식의 이름과 걸맞는 분위기였다·

“···그날의 기억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검선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느껴지는 것이라곤 얕은 원망과 불신· 

애도를 담은 슬픔·
소리보단 감정이 깃든 흔적들이다·

무림맹에 관한 불만이 느껴지는 무호(無號) 속, 나는 검선이 뱉은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기억하라·
지난 습격으로 있었던 희생을 기억하라·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감긴다·

퍼지는 애도와 검선의 개소리 너머 내 눈은 정면을 쳐다봤다·
습격이 있은 후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자들이다·

표정에 담긴 얕으면서도 선명한 감정들·
이를 하나씩 눈에 담아냈다·

신의에게 꺼냈던 말이 떠오른다·

‘아무 일도 없게끔 하겠다고 했는데·’

악착같이 해결하긴 했으나 끝내 모든 걸 해내진 못했다·
하면, 이리될 줄 몰랐을까? 아니, 나는 알고 있었다·

습격을 터트린 순간부터· 말 같잖은 연극을 하려던 그 찰나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 뻔히 알고 있었다·
하니,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아라·

저걸 보기 위해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섰으니까·

저들의 표정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 얼굴들이다·

‘혹여나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고 변명하지 마·’

되새긴다·
죽는 순간까지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사과할 수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그 정도였다·

희생당한 이들에게 지원 명목으로 후원을 보내고· 잃어버린 터전을 복구하기 위해 돈을 썼다·

회귀 이후 전생엔 본 적도 없는 돈을 쓸어모았거늘, 그 재산의 반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깝지 않았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었고 돈이야 또 모으면 그만이다·

고작 그걸 했다고 그 무엇도 바뀌지 않고 죄책감을 덜 수도 없다· 
저들의 표정은 풀릴 일 없을 것이며 잃은 공허함 또한 채울 수 없겠지·

그저 상기할 따름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이런 것이다·’

죄 없는 이를 해하고 쌓고 쌓아 밟고 올라서 속이 썩어감을 삼키며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걸어갈 것이다·

세상을 위한 길이다?
그 또한 변명이다·

‘애초에 세상 따윈 관심도 없어·’

언제부터 그게 목적이었다고·
그건 그저 딸려 오는 얘기다·

“스으·”

티 나지 않게 숨을 내뱉었다· 
거칠어진 속을 달래기 위함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뭔지 아는가·

‘용이 됐다고 조금은 견딜 만하다는 거야·’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예전에 느끼던 감각보단 훨씬 낫다·
되레 이깟 하찮은 놈들의 죽음이 뭐 대단하냐며 우습잖게 보기도 했다·

‘이건 좀 그렇고·’

거기까진 안 된다·
무너지지 않게 중심을 잡는 덴 도움이 되지만, 완전히 넘어가는 건 곤란했다·

눈을 감는다·

검게 그을린 세상 속 무념하게 호흡을 골랐다·

이는 묵념도 애도도 아니다· 구태여 따지자면 주접이라 보는 게 맞겠지·

‘그러니까 주접은 여기까지·’

행한 일을 잊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끝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번 무림맹에선 애도를 표함과 동시에 이번 습격으로 인해 큰 변화를 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연인지 마침 검선의 얘기도 끝을 달리고 있었다·

‘어디까지 얘기한 거지?’

귓등으로 안 듣고 있던지라 뭔 얘길 했는지는 모르겠다·
상관없다· 

어차피 들어봤자 영양가 없을 얘기였겠지·

실제로 이를 입증하듯, 검선의 입에선 상당히 묵직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번 일을 기점으로 정체 모를 단체인 마교(魔敎)를 사파로 지장함과 동시에, 중원 땅에서 사파를 완전히 멸하고자 합니다·”

발언과 동시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섞인다·

사파의 완전한 멸(滅)·

이 발언엔 상당한 의미가 씌워져 있었다·

원래부터 정파와 사파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당장 전쟁까지 몇 번이나 치렀던 관계다·

지금이야 어째서인지 휴전 아닌 휴전 상태지만, 맹주인 검선의 지금 발언은····

‘전쟁 선포·’

잠시 평화와 건립을 위해 멈춰있던 사파와의 본격적인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였다·

“본 무림맹은 사파와의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평화를 위협하는 한, 맞서 싸워 이겨낼 뿐· 패배는 없습니다·”

굳건한 표정을 한 검선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발언은 좋으나 민심을 다잡기엔 여전히 별로다·

습격에 지친 이들 앞에서 전쟁을 벌이겠다니, 퍽이나 도움이 되겠다·

그걸 뻔히 검선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런 그가 구태여 이리 말을 뱉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여, 본 맹에선 귀인을 모셨습니다·”

검선의 발언과 함께 뒤편에 있던 인물이 앞으로 나온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묵연이라 합니다·”

과거 무림맹의 책사로 있던 묵연이다·

그가 나와 인사를 건네자 이를 확인한 주변에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무림맹의 전성기를 같이 보낸 묵연· 일각에선 그가 있었기에 무림맹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맹의 영웅 중 한 명이 위기에 순간 나타났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달라진다·

‘참 효과 좋은 방법이지·’

어느 단체든 위기가 찾아오면 돌파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이것이다·
전성기 무렵 활동하던 상징 중 한 명을 데려오는 것·

묵연은 딱 그런 인물이었다, 

안 그래도 하남에선 묵연이 다시 돌아왔다며 소문이 퍼지고 있을 때다· 애도식에서 묵연이 직접 나타나 이를 인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

-정말···정말 책사님이시라고?

-내 죽기 전에 저분을 다시 뵙게 될 줄이야····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저분이라면····

불신과 의심이 흔들린다·
어쩌면, 과거 검존과 함께 무림맹을 이끌던 묵연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등장만으로 그런 희망을 만들게 하고 있었다·

‘흐음·’

이럴 걸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내 예상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보인다·

‘묵연에 관해 덜 파악했던 건가·’

이 정도일 줄이야·
묵연이 지닌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했다·

설마 존재만으로 이런 변화까지 생길 줄은 몰랐다·

게다가·

“또한, 우리는 무림맹의 기둥을 잃었습니다·”

검선에겐 이번 애도식에서 묵연 말고도 준비한 패가 더 있었다·

“찬란히 빛날 영웅을 셋이나 잃어 참담한 심경입니다만···· 앞서 송곳니를 갈고 있을 사파를 떠올리면 언제까지고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맹에선 잃은 떠난 이들을 기리며 그들이 두고 간 자리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사설을 내뱉으며 검선이 살짝 걸음을 뒤로 옮긴다·
무얼 위해?

“이번 습격에서 큰 공을 세운 우리의 빛나는 별 중의 별· 성왕(星王)이 새로운 대주로서 무림맹과 함께 걸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날 소개하기 위해서다·

‘···쓰벌·’

검선의 말을 듣고 표정이 곧장 썩는다·

‘별 중의 별이 뭐야 미친·’ 

소개하는 말이 어떻게 저따위일까· 
소름이 끼쳐 당장이라도 이를 갈고 싶지만 어떻게든 무표정을 유지했다·

-···성왕께서 무림맹의 대주를?

-도대체 어째서···?

아직 소문을 못 들은 이들은 얼굴에 놀란 기색을 담았고·
알고 있던 이들은 소문이 진실임을 알고 눈을 키우기 바쁘다·

‘이런·’

사방에서 느껴지는 눈빛들·
언제나 그렇지만 시선이 꽂히는 건 여전히 부담스럽다·

뭐 어떻게 해아하지? 손이라도 흔들어줘야 하나·
아무리 그래도 애도식에서 그건 좀 그렇지?

내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즈음·

“성왕이 맡을 대대의 명칭은 성룡대(星龍隊)이며· 앞서 있을 사파와의 싸움에서 큰 축을 담당할 중요한 검대가 될 것입니다·”

나도 못 들었던 맡을 부대의 이름과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

‘사파와의 싸움에서 써먹겠다는 건····’

혹, 사냥개 역할인가?
설명만 들어선 그와 다르지 않았다·

‘에이 설마·’

그런 역할을 누구도 아닌 내게 맡길까 싶다·
시선이 움직인다· 목적지는 묵연이었다·

‘저 노인이 이번 일에 손을 뻗지 않았을 리 없는데·’

나는 묵연이 있는 한 내게 그런 일을 맡길 리 없다고 확신했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저자는 날 의심하고 있으니까·’

내가 천마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분명 묵연은 날 보며 그렇게 의심하고 있거늘·
설마 사파 전담부대를 맡겼을까?

‘만약 정말 맡긴 게 맞다면 의도가 뭐지·’

의심하면서도 이런 역할을 쥐여준 이유가 뭘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려던 찰나·

“더불어·”

검선은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성룡대의 창설과 함께· 긴 맹의 역사 속 잠시 찬란한 상징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말을 듣고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상징이라고?’

맹의 상징을 다시 세우고자 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무림맹의 상징은 하나뿐이다·

그때 검선은 내 예상이 맞다는 듯 말을 끄집어낸다·

“···금일 이후 신룡대(神龍隊)가 다시금 부활해 중원을 수호할 것입니다·”

검선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주변의 소리가 더욱 짙어진다·

은퇴했던 책사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과 내가 성룡대주가 됐다는 것보다·

신룡대가 부활할 것이라는 말이 가장 큰 여파를 불러왔다·

유달리 큰 반응에 눈을 조금 좁혀야 했다·

‘이게 그 정도라고?’

여파가 적잖을 건 예상했으나, 저 정도의 반응이 올 줄은 몰랐다·
신룡대가 맹의 상징이었음은 알고 있다만····

‘진짜 어지간히 대단했나 보군·’

애도식 도중 얘기를 꺼낸 것만으로 반응이 심상찮다·

나는 신룡대가 활동하던 시기를 잘 몰랐고 전생엔 그들을 겪어본 적이 없다·
신룡대가 부활을 얘기한 것은 이번 생이 처음이란 뜻이다·

그렇기에 뒤늦게 실감했다·

‘신룡대가 저들에게 대단한 존재들이었구나·’

내 예상보다 사람들에게 묵연의 가치가 높았듯·
더불어 신룡대 또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말이다·

‘왜 쓸데없이 애도식에서 저 지랄인가 싶었는데·’

구태여 슬픔을 공유하고 위로하는 애도식에서 이런 발표를 하는지 의문이었거늘·
반응을 보니 이해된다·

구슬피 울던 눈 안에 묘한 불씨가 스민다·

안도감· 
조금씩 시들어가던 감정이 다시금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제대로 활동도 하지 않고 부활만을 예고했거늘·
신룡대란 이름이 언급된 것으로 저만큼의 변화인 건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나조차 할 말을 잃게 만들 지경이다·
놀랍기 짝이 없는 광경에 헛웃음이 터지려던 때·

“그렇기에, 상황이 맞지 않음을 알지만,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고자 이 자리에 소개 올리겠습니다·”

검선은 여전히 말을 이어갔고·

“앞으로 중원을 수호하며 정파의 새로운 검이 될 인물·”

동시에·

“신룡대주를 여러분께 소개하겠습니다·”

예정에 없던 말이 들려왔다·

‘뭐?’

신룡대주?검선의 말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무슨 말이지·’

이건 못 들었던 얘기다·

애도식을 끝으로 묵연과 나를 소개하고 거기에 신룡대의 부활을 예고할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신룡대주에 관한 건 듣지 못했다·

그 탓에 아직 안 뽑았거나 오늘은 안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새로운 신룡대주를 소개한다니?

뜬금없는 얘기에 놀람을 머금던 순간·

스륵·

“···!”

옆으로 인기척이 스친다·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돌아가자 누군가 내 옆을 스치고 걸어감이 보인다·

‘뭐야···?’

등을 보고 놀람을 삼켰다·
분명, 직전까지 내 옆엔 아무도 없었다· 

당장 방금까지 그랬거늘 어디서 나타난 거지?
하물며·

‘나타날 때까지 내가 눈치를 못 챘다고?’

외상을 입은 시점이라고 해도, 바로 옆을 지나가는데 눈치채지 못하다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일이다·

노려보듯 날 지나친 인물을 쳐다봤다·

우선 대주를 뜻하는 흰 무복을 입고 있다·
키는 칠 척 조금 넘고 다소 마른 체형· 

거기에 검은 머리칼을 질끈 묶어낸 사내·
왼 허리춤에 검을 찬 걸 보아 왼손잡이로 보이며 걸음걸이는 일정하고 정갈하다·

대체 누구일까·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살피지만 파악할 수 없다·

그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을 가린 황색의 가면·
신룡대주는 대대로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가면을 쓰고 정체를 감추고 지낸다고 했던가·

이를 입증하듯 그 또한 가면을 쓴 모양이다·

차분히 걸어 맹주 옆에선 사내·
그를 보며 검선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새로이 부활할 신룡대의 대주입니다·”

소개하는 말에 사내는 짧게 고개를 숙인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미세하게 예를 갖출 뿐·

겨우 그것뿐임에도 주변 시선은 전부 그에게 향하고 있다·

새로운 신룡대주· 
그 이름에 담긴 존재감 때문이다·

나 또한 그의 등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체를 잘 모를 인물·

심지어 내 기감을 가볍게 뚫어낸 강자·

그것만으로도 그를 눈여겨볼 이유는 충분하나·

‘하·’

이유는 단순히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신룡대주라며 나타난 놈·

저놈의 등을 보며 서서히 눈을 좁혔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

저놈에게서·

‘지금껏 왜 안 움직이나 했다·’

다른 것도 아닌·

혈마(血魔)의 흔적이 느껴졌다·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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