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2
흔히 강호인들이 천살고성의 주인을 생각할 때 피에 취한 미친 살인광을 떠올리고는 했다·
사실 그렇게 막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같지는 않았으니 적어도 천살의 살성들이 미친개처럼 광분하여 피를 보자며 물어뜯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에 미친 살인광이란 모습조차 사실은 역대 천살의 주인들이 일부러 취했던 허상이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천살들이 서로 만날 일도 없으니 그저 개인이 자신을 감추는 방법으로 쓰면 되겠다고 판단하고 써먹을 정도였으니·
오히려 천살성들은 주도면밀한 살인귀에 가까운 것이다·
덕분에 청 역시 천살의 기운을 받은 지금에야 그 정신이 또렷하게 날을 세웠다·
가장 먼저 한 생각은 통렬한 반성이었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을 못 했지?
호신강기가 무슨 절대 마법 보호막이야?
초전도충격분산 신소재도 아니고 완벽하게 모든 충격을 흡수할 수가 있나?
초전도를 무슨 십 할 백퍼센트쯤 되는 뜻으로 아는 청이 사회과학 전공자다운 생각을 하며 초곽을 살폈다·
애초에 검기 대 강기의 문제가 아니었잖아·
그만큼 후려쳤으면 초곽 아니라 초곽 할애비라도 어디 한 군데 살이 터져 피멍 들고 뼈에 금까지는 갔어야지·
무심한 차가움으로 광택을 잃은 눈동자가 초곽의 모습을 조용히 비췄다·
이성은 완전히 잃은 것 같고·
그럼 오히려 편하지 뭐·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세상 모든 스승들이 한 번은 하는 소리지만 정작 그 본인조차 지키기 힘든 것이다·
이성을 잃고 살의에 붙잡히면 정직해진다·
눈이 찌를 장소만을 보고 몸은 속임수 없이 그대로 따라가니 오로지 적을 참살하는 데에만 사로잡힌 얼간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청이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초곽을 맞이했다·
찔러오는 검끝이 좌우로 흔들리며 세 개의 형상으로 갈라지니 목과 심장을 노리는 변화와 함께 하나는 사선으로 휘어 허리를 향하는 것이다·
보법을 모로 밟고 골반을 비틀며 척추를 뒤로 잡아당기니 목의 앞으로는 살벌한 칼바람이 훅 끼치고 가슴은 따끔!
악! 아씨 또 베였네·
그러고도 공격이 하나 남아 청의 손등이 베어오는 칼날의 옆면에 닿아 부드럽게 밀어 방향을 틀었다·
초곽의 몸이 칼날을 따라 바깥으로 쏠렸다·
청이 좌로 빠지며 복신적을 휘두르니 만년한철 몽둥이가 무릎 뒤 오금을 향해 쐐액 공기를 가르며 파고들었다·
퍽!
오금을 때리면 무릎이 튀어 앞으로 날아간다·
초곽이 무릎을 꿇는 자세로 쓰러진 후 우당탕 굴러 나가떨어졌다·
청이 따라가지 않고 가만히 숨을 내쉬며 초곽의 모습만을 눈으로 쫒았다·
방금도 전혀 타격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아예 충격이 안 들 수가 있나?
그러나 화경의 고수가 좀 구른다고 다치고 부러지겠는가·
데굴데굴 굴러나가다 반동으로 벌떡 일어나니 다시 진각을 밟아 달려드는 것이다·
“죽인다! 네년! 죽여버리겠다!”
흥· 누가 할 소린데·
청이 콧방귀를 뀌며 역으로 땅을 박차 달려들었다·
상대가 대로하여 이성을 잃었기에 오히려 상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원래 청이 매번 입을 터는 것이 그걸 노리는 까닭이었으니·
물론 그에 더해 청의 이성이 차갑게 가라앉은 덕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살성으로 회까닥한 상태에서는 자신이 정상이라 여기기에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계속 처맞다가 크게 두 번 정도 베이고 나니 이제 저 검법도 슬슬 눈에 익어오는 것이 익숙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을 뿐·
청이 복신적을 쭉 밀어 초곽의 칼날받이를 콱 찍었다·
검로의 시작 지점에서 비틀린 힘이 작용하니 초식이 방향을 잃고 흔들려 표류하고 만다·
이어 할퀴어 오는 조수를 팔뚝으로 막아내고 악! 시발! 화끈하네! 발끝으로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차고 나니 초곽이 앞으로 쏠렸다·
복신적이 잔상을 그리며 초곽의 뒷통수를 빡!
초곽이 안면으로 당가 앞마당에 긴 획을 그리면서 죽 미끄러졌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는 초곽을 보며 청이 계속 흉악한 궁리를 했다·
이대로 지치게 만들면 되기야 할 텐데·
내공이 무한한 것도 아니고 저렇게 강기 쫙쫙 뿜고 호신강기 방어술 펼치는 게 얼마나 더 버티겠어·
그런데 그러다 정신이라도 차리면?
‘후훗· 내가 졌넹·’ 하면서 패배 선언 후에 내빼고 나면 내가 그걸 잡아 쳐죽일 수가 있나?
그럼 안 되잖아·
내가 쓸 수 있는 수단이 또 뭐가 있지?
여래신장? 너무 편히 죽잖아· 일단 보류·
흑살마장? 소수마공도 안 통하는데·
탕선탈의무? 눈깔 뒤집힌 놈이 옷좀 벗는다고 헬레레 하지는 않을 것 같구·
청이 가진 것을 점검하며 재차 달려드는 초곽을 향해 복신적을 뻗었다·
백팔수라검 천응낙채·
매가 토끼를 채가는 심상으로 뻗어나간 복신적의 끝이 초곽의 어깨를 밀어내니 복마검의 시작점이 뒤틀려 아예 먼 검로를 그렸다·
그때 발목에 발목을 걸어 월녀산보의 반중력 경신의 원리로 땅을 박찬다·
초곽이 포물선을 그리며 나가떨어졌다·
그 와중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던 살성이 문득 입가를 길게 늘어뜨렸다·
청의 가슴이 크게 베이는 순간 곧장 자세를 취해 튀어 나가려던 최리옹이었다·
그러나 그뿐으로 강환 한 방 먹여줄 자세만을 취한 후에 멈췄다·
생사결의 양상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안목 떨어지는 당난아만 발을 동동 구르다가 태상가주에게 매달렸다·
“꺅 어떻게 저 저 할아버지 청아를 도와줘야 하는 게·”
“아직은 두고 보자꾸나· 보아하니 큰 부상도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허어· 대모께서 어찌 제자를 키우시는지 여쭈었으면 좋겠구나·”
“그게 뭐에요 피가 피가 나는데···!”
그러나 또다시 몇 합의 접전 끝에 나뒹구는 초곽이었다·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고는 있지만 멀리 던져지고 나뒹굴고 비틀려 떠밀리기 바쁘니 누가 봐도 꼴사나운 모양새였다·
“저거 우리 청아가 이기고 있는 거 아녜요? 근데 어떡해 피· 다쳤는데·”
“아이가 초식을 완전히 분해하여 쓸 줄 알고 정신이 선명하여 공격에 보고 대처하는구나· 저 나이대에 이룰 성취가 아니건만·”
본래 초식이란 하나로 죽 이어 수련하며 그 투로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렇게 익힌 무공이 제대로 된 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 몸에 익은 형태를 취해야 했다·
그러나 티끌 하나조차 변수로 작용하는 실전에서 제대로 될 리가 있나·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실전으로 원리 자체를 이해하고 나면 그때는 어느 부분이건 뚝 끊어 자유롭게 꺼내 쓰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다만 청의 경우야 완전히 날로 먹었다·
초식을 분해하여 쓸 줄 아는 게 아니라 애시당초 머리에 박힌 것이 완전히 분해된 초식들이다·
게다가 한계를 넘은 신체 능력치들·
힘과 균형과 유연함이며 체력까지 이미 사람을 초월하여 발달하였으니 초식을 써서 머릿속에 그린 장면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멀쩡하잖아요·”
“그저 소리만 요란하지 살살 때리는 것이 아니겠느냐? 내 보기엔 화경의 고수를 상대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만은·”
태상가주가 잘 나가다가 헛다리를 짚었다·
청이 들었다면 독 할아버지도 노망이 났냐며 따질 만한 소리였다·
그 와중에 벌써 열 번이 넘게 나가떨어지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초곽 역시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그야 딸뻘의 소녀에다 한참 하수를 어쩌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댔으니 점점 그 분노가 커지기만 하고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는 해도·
그러다 보니 금의위의 수하들에게서도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불순한 수군거림이 점차로 번져나간다·
솔직히 꼴사나우니까·
그러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초곽이 달려드는 대신 자리에 우뚝 서 눈을 부릅뜨며 놀란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하련 공주? 어찌 이런 장소에····”
그리곤 입을 열 때마다 헛소리의 연속이었다·
“안 됩니다 어찌 이런 장소에서·”
“체통을 체통을 지키셔야·”
“아니 아닙니다· 저도 저 역시·”
“공주님 아니 처혜! 혜아야!”
그러자 관군이 선 쪽에서 여기저기 헉 허헉 숨 넘어가는 소리가 터졌다·
하련 공주는 말 그대로 공주다·
그리고 하련 공주의 이름은 하련이 아니다·
하련이란 이름이 아니라 황제가 내린 별칭에 불과한 것이다·
황족의 본명이란 본래 사람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대한 죄를 짓게 되는 존귀한 것이다·
그래서 감히 이름으로 부를 수 없기에 따로 하련이라 부르라고 정해준 황상의 지엄한 배려이신 것이다·
그럼에도 백주대낮 해가 벌겋게 떠서 무수한 사람들 자리한 대지에서 황족의 이름을 입에 담았으니 그야말로 불경하다는 표현으로 다 하지 못할 참담한 대죄였다·
황실 알기를 동네 북처럼 아는 무림인들조차 감히 황족의 본명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초곽의 기행이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돌연 칼을 집어던지고 허리춤을 끌어 요대를 풀고 바지를 거칠게 끌어 내리린다·
벌떡 선 하물을 모두에게 자랑하듯 세워 허공에 손을 집고 허리를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하하! 좋으냐! 일국의 공주라는 년이 참으로 음란하기도 하지! 처혜 이년!”
과장 조금 보태서 싸악 핏물 빠져나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관부 인물들이 일제히 핏기가 가셔 창백하게 새하얀 얼굴을 하고 눈동자를 떨었다·
“공주라더니 아주 못 써먹을 창녀로구나! 이 구멍이 아주 허벌이 아니냐! 허공에 좆질을 해도 이것보단 느낌이 있겠다 개같은 년아!”
그야 실제로 허공에 좆질을 하고 있으니까·
다들 그런 생각을 속으로만 삼켰다·
“당장 바짝 조이지 못해! 이 씨발 년! 감히 이 초곽 어르신을 두고 누구랑 굴러먹었느냔 말이다!! 공주는 무슨! 하련이 창기의 기명이었단 말이냐!!”
그러며 연신 한 팔로 허공을 후려치는 것이 도저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대참사였다·
심지어 얼마나 몰입을 했는지 청이 조심조심 다가가 버린 검을 주워드는 와중에서도 그저 허리를 흔들기에 바쁜 꼴이었다·
청이 진기를 검날로 몽땅 밀어넣었다·
다시 여러 색 섞인 검기가 찬란한 광채로 확 터져나왔다·
청이 땅을 짓밟아 구덩이가 움푹 패였다·
가공할 힘이 담긴 진각이 발바닥에서 발목을 넘어 무릎과 허리를 거쳐 힘을 더하니 섬전과 같은 찌르기가 초곽의 아랫배로 파고들었다·
환상 속이라고는 하나 거사를 치르는 도중엔 호신강기도 무효인 모양·
그럼에도 무슨 강철을 찌르는 듯한 저항감에 견디지 못한 검날이 똑 부러질 정도였다·
이런 몸뚱이에 호신강기까지 두른 놈한테 칼이 들어갈 리가 있나·
무슨 특수한 외공 같은 건가?
말로만 듣던 금강불괴인가?
부러진 칼날에 등과 배가 꿰인 초곽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청을 올려다보았다·
“공주? 어째서···”
단전이 꼬치가 되어도 약효는 여전한 모양·
하기야 칼에 찔렸다고 중독이 해독이 될 것 같으면 해독제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침 대신 칼침 한 방씩 놔주지·
청이 대답 대신 숨을 들이켜 소리를 질렀다·
“감히 공주님을 모욕하다니!! 참을 수 없다!! 감히!! 그 누구더라 그래 수련 공주님을!!! 불경죄 안돼! 불경죄 싫어! 죄인은 고자를 받으라!”
동시에 청의 발차기가 초곽의 가랑이 사이로 파고들었다·
꽝! 숫제 담벼락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초곽의 몸이 아예 하늘로 한 장 반 높이까지 떠올랐다가 추락해 바닥을 굴렀다·
이번에는 확실히 느낌이 왔다·
골반의 앞쪽으로는 양쪽 치골과 뒤쪽으로는 꼬리뼈 어림어귀가 모조리 가루가 되어 박살이 나는 바로 그 생생한 박살의 촉감이었다·
무엇보다 골반과 발등 사이에 살점들이 끼어 으스러져 뭉개지는 감각이 만족 그야말로 대만족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계속 고쳐쓰다가 완성하고 나서 시간을 보니 벌써 열한시반이·· 애교로 봐주세용
밤을 지샜더니·· 일단 자구 있다가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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