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3
곧 청의 눈빛에도 반짝반짝 광택이 돌아왔다·
대정선기가 세수기와 함께 사이좋게 불경을 외며 척추 뒤편 독맥을 타자 반쯤 열린 상단전으로 빨대를 꽂았던 흉험한 별이 슬그머니 빠져나와 없었던 척을 한 것이다·
순순히 물러난 이유는 알 수 없다·
사람이 별의 의도를 어찌 이해하겠는가·
청이 멀쩡해진 엄밀히 말하자면 천살고성의 살심이 빠져나가서 감정적이고 멍청하여 잡생각도 많은데 딱히 착하지조차 않은 상태로 되돌아와 쓰러진 초곽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며 입으로는 연신 고운 포말로 게거품을 질질 흘리는 중이었다·
와· 아직도 안 죽었네·
아니지· 죽을 정도는 아니었나?
겨우 단전이 꿰이고 골반의 하단이 수천 조각 자잘하게 나눠지게 된 것 뿐이다·
당장 숨이 넘어갈 치명상은 아닌 것이다·
청이 쪼그려 앉아 초곽의 오른 손목과 팔꿈치를 턱 움켜쥐고 관절의 반대 방향으로 접었다·
강철조차 쉽게 휘는 청의 괴력이다·
그럼에도 부들부들 손만 떨리며 그저 끝까지 펴진 팔을 붙들고 있는 모양새였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신체인지·
그렇게 낑낑거리다가 톡 토독 토도독·
뼈에 단단히 붙은 건 조직이 한 올 한 올 뜯겨나가는 달콤한 촉감과 함께 이내 우득!
“오· 됐다·”
청이 희희낙락 미소를 지으며 초곽의 하박을 좌우앞뒤로 연신 접었다 폈다 난리였다·
그제야 구경꾼들도 청의 의도를 깨달았다·
손목을 붙들고 부들거리길래 진맥이라도 잡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사람 팔뚝을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도어사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이냐!”
“어···· 전리품 수색?”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감히 황실의 관리·”
“대역죄인!!! 관리는 누가 관리에요? 다들 얘가 공주님 욕하는 소리 못 들었어요? 와· 진짜 너무 심했어· 어떻게 여인에게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있어요? 듣는 내가 치욕적이던데·”
겨우 끊어 빼낸 팔뚝 아래를 빙빙 돌려 가죽과 힘줄을 꼬아대면서 하는 소리였다·
“아!! 그래!! 설마 도어사께서 이 대역죄인과 한편인가요!! 그래서 감싸주려 하시나요!!”
“아니아니아니! 아니다! 아닐세! 아니라고!”
도어사가 깜짝 놀라 격렬하게 부정했다·
당가고 뭐고 저기 잘못 휘말리면 일가 몰살도 각오해야 할 판이었다·
치졸하고 비열한 수작질이었다·
아마 독 당가이니 사람에게 헛것을 보게 하는 독이 없을 것인가·
하련 공주는 황상께서 친히 천하제일미인이라 공언한 시대의 가인이니 초곽이 공주의 허상을 보고 음란한 행위를 꿈꾼 것도 사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궁에 상주하며 수련한 금의위라서 위사 중에 상사병을 앓아보지 않은 자가 없는 판이다·
그러나 하련 공주는 황상께서 가장 아끼는 따님이시다·
특히 도어사와 같은 일부 극소수의 고관들은 황제의 딸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다 큰 딸내미를 아직도 어린애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니 심지어는 잠자리가 불편할까 걱정이 되어 옆에 재우고는 했다·
황궁에서도 최고위 관직들만이 아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그런 공주를 모욕했으니 그야말로 일가의 몰살은 확정이오 삼족인지 구족인지 그 자비를 구해야 할 판이 아니던가·
그 와중에서도 청이 마침내 성과를 보았다·
늘어나고 찢어진 원래 오른쪽 팔꿈치였던 그 부위는 너덜너덜 뭉개져 피가 줄줄 흐르다가 그리고 마침내 쩌억·
기어고 초곽의 팔뚝을 신체에서 분리해내고 만 청이 만족스레 몸을 일으켰다·
—-
불미스러운 과정이 있기는 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어디 한 군데 불미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는 생사결이었기는 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지옥 아가리술과 의혹 만발인 비겁한 하독 추정을 걷어내도 어떤가·
무려 화경 그것도 금의위의 세 번째 강자가 고작 절정의 어린 소녀에게 농락을 당해 굴러다닌 것이 사실이었다·
도어사는 일단 팔뚝 없는 위지휘첨사를 데리고 물러나는 편을 택할 수밖에는 없었다·
더 있어봐야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그보다 군의 사기가 아주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가고 있었으니 그도 수습해야 했다·
청은 팔뚝 하나 챙겨 독 할아버지한테 선물처럼 척 들이밀었다·
“할아버지 이거 이상하던데· 한 번 봐 줄수 있어요? 무슨 사람 몸이 아니라 강철 아니지 한철도 이렇게 단단할 것 같지는 않던데요·”
구워먹거나 국 끓여먹을 것도 아닌데 사람의 팔을 떼서 가져올 이유가 있겠는가·
이상하니까 한번 알아봐 달라고 가져온 거지·
물론 가져오는 데에 한정이었다·
청이 고자 제조로 만족감이 모자랐다면 재미 삼아 뜯어다 내팽개쳐도 이상하진 않았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
태상가주가 얼떨결에 받아들고 나서 그게 대체 무슨 해괴한 소리냐 물어볼 때였다·
“야!! 꼴이 이게 뭐냐구! 진짜 속상해서!”
당난아가 소리를 빽 지르고는 청의 손을 잡고 질질 끌어 데려가버린 것이다·
사실 청의 상처 중에 목숨과 연관된 심각한 것은 없었다·
사실 뼈가 상하거나 근육이 베이면 천살이고 뭐고 아예 힘을 못 쓴다·
출혈 심한 부위를 베였으면 도중에 실신하여 쓰러지고 말았을 테고·
해봐야 자잘한 거죽 뿐의 자상이었다·
다만 가슴팍의 상처는 꽤 깊었는데·
당난아에게 이끌려 의당으로 든 청이 그제야 제 가슴팍의 상처를 눈에 담았다·
“와· 가슴이 일과 이분의 일 두 개가 됐네· 으 징그러워·”
1과 (1/2)×2· 나름 아주 정확한 표현이었다·
떨어져 나간 부분 없으니 총량이야 그대로인 셈이지만 왼편 젖무덤이 세로로 비스듬히 썰려 뭔가 뭔가뭔가한 징그러운 단면을 드러낸 상태였다·
“지금 그딴 소리 할 때야!”
당난아가 청의 어깨를 찰싹 때리며 씩씩 가쁜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깊었어도 갈비뼈가 죄다 잘려나갔다구! 왜 조심하지도 않고!”
“아니 화경 상대로 이 정도면 잘 한· 아니· 미안합니다····”
청이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달아 둔 당난아의 표정을 보고 곧장 꼬리를 말았다·
걱정으로 속상해하는 사람의 속을 뒤집기에는 청이 모질지 못한(?) 심성의 소유자라서·
대신 청이 슬그머니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 혹시 흉터가 남을까?”
“그거 걱정하는 애가 몸도 안 아끼고!”
“아니 그게 아니라· 흉터 남으면 좀 멋있지 않을까? 원래·”
“야!!!”
찰싹· 청이 기어코 한대 더 얻어맞았다·
그나마 당난아라서 찰싹으로 그친 것이다·
서문수린이 들었다면 부상이고 뭐고 현경에 달한 고수의 심후한 일격을 불러들였을 공포의 조동아리였다·
“내가 책임지고 흉터 안 남게 할 테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
청은 조금 억울했다·
세로로 비스듬히 갈라지고 이후에 또 가로로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베였다·
둘이 합치면 딱 멋들어진 십자가 모양이다·
검의 고수라면 그런 상처 하나 쯤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진짠데· 흉터 남아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열내지 않아두·”
그러나 청의 진심은 통하지 않았다·
통하기는 커녕 거하게 오해만 불러들였다·
여인이 가슴을 입에 올리지는 않더라도 누구 하나 중요하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적당해도 적당한 대로 혼자서 몰래 비춰보면서 모양은 괜찮은가 색이 이상한 거 아닌가 예쁜 게 맞나 아닌가 나중에 말 나오면 어쩌지 고민을 품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걸 반으로 갈라놓고도 혹여 미안해할까봐 하는 소리가 흉이 남아도 멋지지 않겠느냐면 오히려 더욱 미안해질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실은 청이 오해할 소리 하기는 했다·
여인 가슴팍에 멋진 상처가 있어서 어디다 쓰겠는가·
지나가던 사람한테 가슴 까 보이면서 ‘이것 보세요· 와 칼자국! 십자가 아시는구나!’ 하고 자랑할 것도 아닌데·
“너 진짜· 정말···· 흑·”
당난아가 기어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나선 한 여인의 순정을 헛소리로 농락한 대가를 절절하게 치러야 했다·
“악! 아파! 조금만 살살! 살려 꺄악! 사람 살려! 의원이 사람 죽인다!”
“아니 마비산 잔뜩 쳤는데 왜 엄살이야? 이 정도면 대상(코끼리)한테도 들을 정도거든?”
“그 앵속 앵속을 좀 주면 안 될까?”
“얘는 앵속이 얼마나 해로운 줄 알아?”
“쓰읍 후욱 후욱· 끕 끄흑· 악!”
청은 출도 이후 처음으로 공략글을 저주했다·
인간적으로 마취는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앵속은 드는데 마취는 안 들어?
실은 고통 자체가 신체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취는 해롭다·
앵속이야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고양시켜 감추는 것에 불과하니 현대적으로는 무슨무슨신 하는 호르몬이 어쩌구저쩌구 분석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청은 어차피 모른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마취도 안 듣는 저주받을 체질과 그 선택을 추천했던 그 분을 욕하는 수밖에는·
—-
독 할아버지가 찾아온 것이 그 날 밤이었다·
청이 아낌없이 주신 독 어르신을 반갑게 맞이했다·
“와· 그거 독 엄청나게 잘 듣던데요·”
그야 잘 들을 수밖에는 없다·
당가에는 칠대 극독이라 부르는 당가의 역사 속에서도 거의 우연의 산물에 가깝다고 평가가 되는 일곱의 절독이 존재한다·
팔색분환독 견혼수 신선폐 탈백미망산 칠보단혼산 오독신무 멸혼단의 일곱 종류였다·
태상가주가 개인적으로 만진 재료들이 저러한 당가 최고의 절독들이었다·
게다가 태상가주는 천하 제일의 독제사다·
천하에서 가장 지독한 독을 천하 제일의 장인이 개조한 결과물이었던 것·
화경 아니라 현경 이상의 고수라도 초기에 독기를 빠르게 잡아 몰아내거나 태우지 못하면 그대로 처참한 꼴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초곽이 이성을 잃어 독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건 이미 소수마공으로 혈도가 많이 상한 이유까지도 곁들인 결과다·
“혹시 더 있어요? 세알 다 써버렸는데···”
“허허 어쩌다 나온 것이라 그게 전부였단다· 나도 혹시 남은 것 있으면 미안하지만 좀 달라 하려 하였다마는· 어쩔 수 없지·”
태상가주 역시 아쉬운 티를 냈다·
취미 겸하여 만드는 것이라 그 작품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디 써먹어 볼 사람도 없으니 묵혀두어 따로 그 조제를 적어두지 않았다·
그러나 개조한 탈백미망산의 가공할 효과를 보고 제대로 이름 붙여 가문의 극독 목록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다 써버렸다고 하니·
“아· 그래· 그런데 어찌 하독을 한 것이더냐? 따로 용독술을 배운 것이 있더냐?”
“아· 그거요·”
청이 손을 내밀자 최리옹이 멀뚱히 보았다·
청이 입술을 오무려 휘파람을 불고 나서야 그 뜻을 깨닫고 복신적을 꺼내 내미는 것이다·
복신적을 받아든 청이 피리 구멍 속으로 독환을 집어넣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절도있게 한번 탁 흔들었다·
만약 안에 무언가 들었다면 원심력을 받아서 톡 튕겨나갔을 터다·
복신적은 강기도 버텨 소리도 나고 독환까지 발사할 수 있는 아주 만능 몽둥이였던 것이다!
“오오! 아이의 기지가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에 태상가주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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