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5
청이 급히 이불을 쥐어 털었다·
파라락 내공으로 천 자락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다다다닥 나무 조각들이 부딪친다·
“화 화포! 진천뢰!”
“어?”
“야!! 위험!!”
당난아가 물에 뛰어들듯 청을 향해 몸을 날려 둘이 엉키니 침상 너머로 굴러떨어져 우당탕 한 몸이 되어 나뒹굴었다·
그리고는 쾅!!
귀청 찢을 듯한 폭발음과 함께 온갖 부서지고 찢기고 박혀드는 소리가 일시에 난리를 쳐서 귀가 먹먹해지며 약한 이명이 돌 정도였다·
군필 미소녀인 청이라서 화약의 거대한 폭발음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포격!? 이거 포격이지!?
“아니 무슨 무림에 지연신관이 있어!?”
안타깝지만 불태우기를 민족의 얼로 삼아 역사와 조상을 숯덩이로 만든 중화 인민들이다·
심지어 부모야말로 구시대의 적폐라면서 그 아들딸이 앞장서서 때려죽였던 대의를 위한 비정한 희생을 깔깔거리며 행한 붉은 민족!
그러니 불태우기의 궁극 원료 원조 화약의 발명가이자 화기의 개척자들인 중화인이 폭탄을 멀리 쏜다는 단순한 발상조차 하지 못했을 리가 있나·
심지어 무림인들 씨를 말리겠다고 황실에서 이를 갈아 화포장들이 밤 없이 갈려 나가는 야근 문화가 벌써 백 년이 넘었다·
“당장 빠져나가야·”
포격을 아는 것과 맞아보는 것은 또 다르다·
더럭 겁을 집어먹고 곧장 빠져나가려던 청의 손목을 당난아가 재빨리 잡아챘다·
“옷! 옷부터 입어!”
“포탄 맞아 죽게 생겼는데 무슨 옷·”
“빨리!!”
그리하여 쿵쿵 연신 대지가 울리고 멀고 가까운 포성 진동하는 때에 두 여인이 돌아다니며 어찌어찌 옷을 꿰입던 때였다·
콰직 소리와 함께 또다시 벽을 뚫고 들어오는 포탄이 있어 뛰어뛰어 바닥에 납죽 업드리니 꽝! 우수수 천지가 흔들리는 것만 같아서-
기이이익·
순간 모든 목재가 일시에 뒤틀리며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낸다·
“뭐해? 무너진다! 빨리 나가야·”
“독! 독 챙겨야지!”
당난아가 이 서랍 열고 저 서랍 열어내며 안에 든 것을 품 안으로 쓸어 넣고 허벅지에 찬 고대에 끼우고 팔뚝 아대에 밀어넣고 분주하게 착착 무장을 채우느라 바빴다·
그리고 와직 가슴을 선뜩하게 울리는 파열음에 청이 곧장 당난아의 허리를 옆구리에 끼워 문짝으로 돌진했다·
어차피 나무 살에 종이 바른 문짝이라 무인의 몸으로 충분히 부술 수 있는 구조물이었다·
“악!”
다만 당난아를 허리에 끼웠으니 청보다 먼저 짐짝의 머리가 문에 닿았다·
당난아의 머리가 공성추 대가리라도 된 것처럼 정수리로 문을 뚫어내 박혀든다·
밖으로 나와 내려놓고 나니 당난아가 목에 창호를 칼(사극에서 죄인이 목을 끼운 긴 판자)처럼 끼운 채로 도끼눈을 떠 청을 노려보았다·
“앗 실수·”
“씨이 됐고!”
당난아가 뒤집어쓴 창호 문을 내팽개쳤다·
사방이 난리통이었다·
코에는 불타는 냄새·
밤하늘에 더욱 까맣게 뭉게뭉게 피어오로는 것이 연기요 땅에서 치솟는 것이 화광이었다·
쐐액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 가깝고 먼 곳에 포탄 떨어지고 와장창 지붕이며 벽이며 개박살이 나는 일들이 선명하게 귀에 잡힌다·
그리고 처절한 괴성이 하나·
“얘야! 안 돼! 얘야!”
“할아범! 나 여기 있어요!”
무너진 별채 잔해를 파헤치던 최리옹이 급히 다가와 청의 팔다리를 더듬었다·
그렇게 청의 무사를 확인하고는 눈에 띄도록 안도하는 기색으로 면사를 꺼내 척 씌워준다·
“이제 어떻게 해!?”
“지하! 통로가 있어!! 이쪽!! 내가 밟는 데만 밟고 따라와!”
당난아가 엉망이 된 당가타 안쪽으로 경공을 전개해 달려 나갔다·
청이 그 뒤를 따라 박살 난 대문을 넘고 좁은 골목을 지나 불타는 건물을 돌아 굽이굽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건물 뒤편 연못 근처에 도착하니 당난아가 땅을 두드리고 바짝 엎드리더니 용케 바닥을 쩍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이쪽이야 서둘러·”
당난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벽에 붙은 사다리를 붙잡아 척척 내려가버리고 말았다·
이거 뚜껑 안 닫아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집주인네 딸내미가 그렇다는데·
청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다보니 중간 쯤에 텅 하고 뚜껑 닫히는 소리가 났다·
쿠웅 쿠웅· 지하에서 맞는 포격은 여운이 긴 거대한 북소리 같았다·
북을 칠 때마다 푸스스 흙먼지가 쏟아져 머리에 쓴 면사의 갓 챙에 토도독 부딪쳤다·
맨머리를 한 당난아는 그대로 끼치는 흙먼지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털 뿐이었지만·
그렇게 지하 통로를 헤쳐가다보니 건물 두어채는 들어갈 법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할아버지!”
“아아야! 서문 아兒도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의외로 지하 공동은 차분한 기색이었다·
음울하기는 하나 슬프지는 않고 충격을 받은 것 같기는 해도 겁에 질리지는 않았다·
중심에는 이미 얼굴 여러 번 본 당가 정예 고수들이 큰 탁자를 끼고 빙 둘러서 있었다·
청이 그리로 다가가다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창백한 살결이나마 부드러운 인상으로 딱 책이나 읽게 생긴 샌님이었다·
“뭐야 자유? 친구는 도망친 거 아니었어?”
“무엄하다!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입을 터느냐! 당장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지 못할까!”
그러자 창대를 쥔 작은 체구의 여인이 우렁찬 소리로 호통을 쳤다·
청이 눈을 꿈벅거렸다·
“오잉? 왜? 누구 안전인데?”
“사천의 주인이신 덕현친왕 전하께서 자리하셨거늘 감히 일개 무부가 고개를 똑똑히 들고 건방을 떠는 것이냐!”
“오잉? 친왕?”
“앗! 비실 앗! 소녀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닷!!! 일전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청의 옆에서 터져 나온 비명 같은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각진 자세로 바닥에 납죽 엎드린 당난아의 등짝이 보였다·
급해서 머리를 미처 묶지 못했으니 고개를 얼마나 격렬하게 박았으면 머리카락이 펼쳐진 붓처럼 일자로 곧게 뻗었다·
청이 반개한 눈으로 그 꼴을 내려다보았다·
얘는 저번에도 그렇고·
무릎이 좀 너무 싸지 않나?
어쨌거나 당난아가 미동도 없이 석상처럼 땅에 붙은 가운데 청이 자유를 보았다·
“어· 음· 친왕이셨어요?”
자유가 민망한 표정으로 어깨만 으쓱거렸다·
—-
장기에서 포의 포진이란 대개 궁 혹은 궁의 근처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만큼 중요한 기물인 까닭이었다·
그럼 연장에서 금군의 화졸은 그야말로 금군 군졸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자를 선별하여 채운 정예 중의 정예다·
일신의 강건함 뿐만 아니라 충성심을 검증한 충신들이자 정확한 포격을 위한 수리학에도 능한 지자들이었다·
그러니 포대의 방호란 일반적인 군졸과 같지 않으니 무예를 익힌 방포대가 함께 주둔하여 그 수호를 맡았다·
무림인으로 따지자면 이류 끝자락 제대로 병장기를 다룰 수 있는 수준이니 병진을 이루어 전략을 펼치면 무림인이라도 상대하기가 쉽다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구파일방 십대세가에서 이상한 전력을 가진 세력이 하나 있었으니 고수를 상대하기에는 모자라다는 평가를 들으나 하수를 상대로 그 악명이 드높았다·
“야 무슨 냄새 안 나냐? 뭐지? 달달한데?”
“복숭아! 복숭아같은데요·”
차가운 밤공기에 향긋한 복숭아 향이 섞였다·
“복숭아? 확실히 복숭아가 철이긴 한데· 누가 이 오밤중에 복숭아를 먹 카악 쿨럭·”
갑자기 치미는 가래를 밷어낸 군졸이 뒤이어 근질근질한 코 아래를 훔쳤다·
“뭐야? 피? 어···”
순간 군졸이 비틀거리다 털썩 주저앉았다·
“호장님? 왜 그러세요?”
“이상 좀 피곤한데· 왜 이러지·”
뒤이어 눈에서도 무언가가 흘러내리니 시뻘건 선혈이 눈물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호장님 피 피가! 크헥 쿨럭 쿨럭!”
호들갑을 떨던 병졸이 사례가 들려 마른 기침을 해대다 순간 왈칵 치미는 것을 토했다·
“어···?”
그때였다·
어린애 머리통만 한 것이 먼 곳에서 날아와 둘 사이로 쾅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빌어먹을! 커헉 큭· 독탄이다! 모두 제독산을 삼키고 제독면으로 입을 막!”
쾅!! 안타깝게도 독탄이 아니라 화탄이었다·
산산조각나 흝어진 철편들이 두 사람의 살과 뼈를 찢어발기니 눈꺼풀이 오르내리고 나선 두 사람의 모습은 형체조차 없이 그저 잔해로만 갈려 대지 위로 뿌려졌다·
—-
점차 포성이 줄어들더니 이내 밤을 찢어내던 요란한 폭발음이 완전히 잦아들었다·
지휘소에서 도어사가 역정을 냈다·
“뭐냐! 누가 마음대로 포를 거두라 하였느냐! 계속 쏴! 아예 잿더미로 만들어버려야···!”
“급보입니다 일 포대가 전멸·”
그 때에 또다시 지휘소로 들어온 전령이 급히 말허리를 치고들어왔다·
“큰일입니다! 이 포대가 전멸했습니다!”
도어사가 이를 부득 갈았다·
“말이 되느냐! 포방대는 무엇을 하고!”
“화탄! 당가 놈들이 화탄을 쓴답니다!”
본격적인 무공 수련을 하지 않은 군졸이 써도 위력적인 것이 화탄이다·
불붙여 멀리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고수가 쓰면 더 위력적이었다·
심지어 각종 투척술의 전문가인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암기의 묘리를 섞어 투척하는 화탄이라면 굳이 포신과 장약이 없어도 초장거리 정밀 투척이 가능한 인간 화포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떻게 무슨 민간의 세가 따위가 화탄을 쓴단 말이냐! 감히! 이 반역자들!”
도어사가 분노에 찬 숨을 씩씩 내쉬며 발광을 했다·
화약 제조는 국법으로 엄하게 금지하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진짜로 대역죄인 역모로 치는 것이다·
도어사가 발을 구르며 치미는 화를 이겨내지 못해 난리를 치는 동안에도 새로운 기별이 들어와 삼 포대의 전멸을 알렸다·
“안돼! 황상께서 내려주신 군졸들이!”
그리고 나서야 도어사가 길게 숨을 들이마셔 다시 깊게 뱉어냈다·
“아니 아니다· 그래 반역자들이 기어코 본색을 드러냈구나·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이로써 행성의 군사를 몰아쳐도···”
도어사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포대를 몽땅 잃은 것은 뼈아프지만 덕분에 당가가 화탄을 몰래 제조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물론 민간에 불법 화탄이 돌아다니는 정도야 도어사 역시 알고 있었지만 샀던 만들었던 어느 쪽이건 역모로 밀어버릴 수 있는 안건이다·
아무리 오대세가니 절세고수니 해도 수십만 금군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이미 증거가 명백하니 무림에서도 감히 황실의 행사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다 수십만 수십만이다·
위사사 한 개에 군사가 대략 육천이며 그러한 위사사가 행정 성 하나에 이미 여럿이며 전시로 모아 징병을 이루면 사천성에서만 이미 삼 만에 가까운 군사가 모인다·
당장 가까운 호북과 섬서 귀주에서만 군사를 더해도 십만이 훌쩍 넘는 금군이 동원되는 것이다·
도어사는 황실 어사부 도찰원의 수장이다·
한 성의 군사 도지휘사를 동원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졌으니 일단 명분이 서면 대군의 지휘권을 가지는 아주아주 높으신 분이다·
그때였다·
또다른 전령이 천막을 찢을 듯이 밀어내며 다급한 흙발을 드리웠다·
“큰일났습니다!”
도어사가 콧방귀를 흥 뀌며 대답했다·
“오냐· 사 포대가 전멸당했다고?”
포대를 잃은 것은 아프지만 고작 화포 이백여 문 포수 팔백여 명이야 황군 전체에 비해서는 한 줌 모래나 마찬가지였다·
모래 하나 던져 명분을 얻었다면 오히려 달가워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그게 아닙니다! 친왕기가 친왕기가 올랐습니다! 놈들이 친왕기를 올려놨단 말입니다!”
그에 도어사의 표정이 확 찌그러졌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