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 TRPG Game Master Chapter 109

EP·109

“···수도기사단?! 교란했다고 들었는데 남아있었던 건가···?!”

처음에는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이잉-!

로데루스의 귀는 기민하게 위화감을 잡아냈다· 엔진음이 시원찮았다· 수도기사단이 전투태세에 나서면 고막을 긁어대는 것 같은 소음이 발생한다·

이렇게 잔잔하지 않아·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자탑의 마법사가 금탑의 마법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는 것이다· 흙 골렘에게 굴러다니는 갑옷을 입혀 보낸 거라면····

수도기사단의 위력은 파워 아머와 아머를 작동시킬 막대한 마력으로부터 나온다· 약한 엔진음으로 보아 저들은 갑옷의 기능을 100%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두려운 적이 아니었다· 숫자는 셋이지만 상대할 수 있다·

갑옷들이 마법사가 쓰던 기묘한 무술을 사용해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부우웅-!

“큭···!”

자신의 레이피어가 어디를 노려오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한참 전에 뻗어진 손이 궤적을 틀었다· 

물러나기 위해 마력을 담아 발을 굴렀으나 다른 갑옷 하나가 절묘하게 발을 걸어 힘을 흩어놓았다· 떨쳐내려고 팔을 휘둘렀다·

다른 갑옷 하나가 비좁은 틈을 파고들어 상완을 툭 밀었다· 축이 흔들리니 제대로 된 타격이 되지 못했다· 주먹은 텅 소리를 내며 투구를 조금 찌그러트리는 선에서 멈췄다·

퍽-!

턱에 건틀릿이 꽂혔다· 별것 아니다· 마력으로 보호하고 있으면 대수롭지 않은 정도다· 레이피어를 역수로 쥐고 배후의 갑옷에게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뒤에서 로우킥이 무릎 뒤를 때리고 앞에서 어깨를 툭 밀었다· 궤적이 틀어졌다· 공격의 실패는 빈틈을 만든다· 옆구리에 무릎이 꽂혔다·

이를 악물고 크게 베었다· 썰물이 빠지듯이 갑옷이 물러나고 밀물이 흘러오듯이 다가왔다·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로데루스는 세 체의 갑옷이 만드는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하나를 공격하면 다른 둘이 막는다·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최소한의 힘으로 공격을 무력화시킨다·

“대체 어떻게···!!”

탁상공론이다·

약자 셋이서 강자 하나를 상대한다는 건 싸움을 모르는 이들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1+1은 2가 아니다· 협력에는 필연적으로 힘의 낭비가 발생하므로 세상에 완벽한 협공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정교한 합격이라고 한들 실수 한 번· 도미노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끝나버리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분명 그랬을 텐데···!

셋이서 하나·

갑옷들은 그 문장을 몸으로 체현하고 있었다·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연수합격에 로데루스는 서서히 뒤로 밀렸다· 피하기 위해서 한 걸음· 다시 또 한 걸음· 

마법사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유도되고 있다!

오싹·

로데루스의 뇌리에 경종이 울렸다·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 특히나 저 남자에게는 더더욱· 

봐라 아주 잠깐의 시간에 이런 골렘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는 손을 뻗었다· 새까만 머리카락 사이에서 빛나는 붉은 눈이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가··· 온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뭔가가 온다!

로데루스는 갑옷의 공격을 무시하고 내달렸다· 그러자 순순히 놓아주지는 않겠다는 듯 갑옷은 손을 뻗어 그의 사지를 잡고 매달렸다·

“발밑에 드리운 그림자·”

관절기를 걸어오는 팔을 힘으로 뜯어내고 날아오는 주먹을 이마로 받아낸다· 발목을 잡아챈 갑옷을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달린다·

“옷장 틈새로 엿보는 어둠·”

심상치 않은 마력이 요동친다· 지금이라도 돌파를 멈추고 방어 태세에 집중할까?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마법은 마법· 자신이 우화를 유지하고 있는 한 마법은 투사체에 불과했다·

“새까만 밤의 고독·”

공격인가 방어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로데루스는 정답을 골랐다· 공격이다· 저 마법사는 멍청이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에 마법을 준비했다면 그것을 맞출 계산도 끝내 두었을 터다·

먼저 죽여야 한다·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로데루스는 온 힘을 다해서 레이피어를 찔러 들어갔다· 첨예하게 갈린 송곳이 마법사의 미간을 파고들기 직전 영창이 끝났다·

“『파심현전(破心玄箭)』·”

검은 화살이 아티팩트가 제공하는 정신방벽을 모조리 부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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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 『무엇』을 당한 거지·

머리가 멍했다· 아니 머리의 반쪽이 뜯겨나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귀가 먹먹했다· 희미한 소음이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로데루스는 몸을 꿈틀거렸다· 자신의 볼에 축축한 흙더미가 문질러지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을 텐데·

“────!”

몸이 경련하고 있었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반응이었다· 지옥 같은 훈련 정신 마법에 당해서는 안 된다며 미리 마음을 부수는 훈련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날 이후로는 ‘마음의 고통’이라는 단어가 지워진 줄 알았는데· 공작의 명령에 따라 사람을 무더기로 죽여도 더 이상 어떤 느낌도 받지 않았는데·

“──────!!”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고 손톱이 부서져라 땅을 긁으며 어떻게 몸부림치더라도 해소되지 않는 것·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감정이 한(恨)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그제야 로데루스는 소음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악──!!”

그것은 자신의 비명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믿고 있었던 사람에게 끔찍하게 배신당했다·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마음을 지탱하던 어설픈 정의는 꺾였다· 

실낱같이 남아있던 기대마저도 잿더미가 되었다·

마음이 찢겨나가는 고통 속에서 로데루스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도 신뢰하는 형제도 친절하고 믿음직한 아버지도 정의도 신앙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슬프고 애통하여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신이 어째서 비명을 질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의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 지독한 환상통이다· 치유할 상처가 없었으므로 이 끔찍한 고통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아아악···!! 크 윽···!!”

로데루스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미약한 빛을 내뿜었다· 정신이 치유되며 약간이나마 고통이 줄었다· 희망이 생겼다· 

이 빌어먹을 마법이 무한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 로데루스는 자신의 것이 아닌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 늘어진 마법사의 모습이 보였다· 첫 유효타가 제대로 틀어박혔으니 마법사도 치명상을 입은 상태이리라· 

처리해야 한다· 명령을 완수해야 한다· 임무에 실패하고 돌아가면 독방에 갇히게 될 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먹으로 때리며 한 걸음씩 전진했다·

앞으로 열 걸음· 

로데루스가 레이피어를 주워 들고 마무리를 지으려는 그때 신호음이 들려왔다· 자탑주가 풀려났다는 의미였다·

“···운이 좋았군· 천민·”

현장에 돌아온 자탑주에 의해 포획당하면 문제가 된다· 로데루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는 순식간에 골목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현장에 남아 의식을 잃은 척을 하고 있던 마법사는 보이지 않게 지면에 깔아 둔 마법 함정을 해제하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은 건 네 쪽이지 이 새끼야····”

로데루스가 한 발짝만 더 다가왔다면 전투는 마법사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었다· 생포되어 있는 대로 정보를 빨렸을 텐데·

마법사는 무거워져 오는 눈꺼풀을 뜨려 노력하면서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중얼거렸다·

“···갑옷이나 아티팩트를 좀 구해봐야 하나· 인형사 메타 되게 괜찮은 것 같은데····”

미약한 물리력을 가지는 홀로그램· 장비를 착용할 정도의 물리력은 있으니 부족한 힘은 템빨로 보충하자는 발상이었다·

마법사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이씨 춥네·”

무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이 억까를 해대는 걸 보면 누가 오더라도 뒤집어엎고 탈출할 수 있을 만큼은 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자탑주에게 해를 끼치려는 놈들은 그만한 무력과 근거를 가지고 해코지를 해 오지 않겠는가·

그는 멍한 채로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보다가·

“이 이게· 무슨 일이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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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이거였다·

“···마탑주님 사고 안 쳤죠?”

“···일어났구나?!”

마탑주는 내 손을 꼭 잡고 손바닥에다가 뺨을 부볐다· 옆에 서 있던 핑발레즈가 내 물음에 대신 대답해 줬다·

“간호한다고 병실을 벗어난 적이 없으셨습니다· 또 자기가 자리를 비우면 누가 미친 마법사님을 노려올지도 모른다고도요·”

휴우·

나는 눈 떠봤더니 제국이 불타고 있으면 어쩌나 했다· 

그러고 보니 핑발레즈는 입원 중이었던 게 아니었나· 

“···너 다 나았냐?”

“예· 미친 마법사님은 3일 정도 주무시고 계셨고요·”

“아이고·”

“미친 마법사님이 어느 정도의 중상이었냐면····”

나는 손을 내저어서 말하지 말라고 했다· 굳이 듣고 싶지도 않았고 내 손바닥이 축축해질 것 같아서 말렸다· 

빨간맛 쪽은 압박을 멈췄다는 모양이다· 보낸 살수가 나한테 털려서 돌아갈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2황자 세력과는 암묵적으로 휴전 상태로 들어갔다고 한다·

파악했던 나머지 흑마법사 거점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꼬리가 잘리기는 했지만 얻은 게 없던 것은 아니니 아쉬워도 만족하기로 했다·

사제의 말에 따르면 나는 며칠의 요양이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냥 아카데미에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크라운홀에 더 남아 있다가 무슨 수작을 당할지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마지막 순간에 마탑주가 돌아가자고 말했던 건 훌륭한 판단이었다· 저택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또 어떤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을지 몰랐으니까·

“···아이씨·”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다· 흑마법사들이 쓰던 수상한 석상도 손에 넣었고 배신자에 대한 심증이 확실해졌으며 빨간맛 공작이 분명히 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쪽에서 보낸 차남 뭐시기도 파심현전을 맞았으니 멀쩡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까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닌데····

그래도 결국 놀아나기만 하지 않았던가· 나는 두들겨 맞았고 핑발레즈 다쳤고· 

내 심기가 불편한 듯해 보이자 마탑주가 눈을 희번덕대며 ‘모조리 죽여버릴까 마스터’ 라고 했지만 말렸다· 지금 전면전으로 싸우면··· 아군 중 누구 하나는 죽을 것 같아서·

마법사는 시간을 비료로 삼아 피어나는 꽃이다·

두고 보자· 내가 어디까지 준비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두려움에 떨게 될 거다 이 자식들·

그렇게 나는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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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마차여행의 끝에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부 부축해줄까?”

“아 네· 부탁드려요·”

우선은 시설 점검부터 마쳤다· 동력 끊긴 적도 없고 침입 기록이 두 번 정도 있었지만 격퇴했고 데이터도 모두 멀쩡히 잘 있었다· 다행이다·

왜 보안점검부터 끝냈냐면 아카데미에 성씨가 빨간색인 학생이 한 명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빨간맛 공작이 자기 아들내미들을 인력으로 쓰고 있다면 그 학생도 공작의 명령을 듣고 움직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아카데미의 내 연구실에서 정보를 빼내 보라든가 그런 거·

마음이 심란했다·

돌아오면 무슨 세션을 열까를 생각하던 나는 어디 가고 스펙업과 흉흉한 암투부터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놀다가 또 습격을 당하면 그건 이제 내 잘못이 된다· 대비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쪽의··· 동향이라도 읽어낼 방법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겠는데·

“······?”

“어 마탑주님· 왜요? 어디 문제 있어요?”

“조 조금· 이상한 주파수가 잡혀서· 너··· TRPG 다른 거 한 적 없지?”

“아 예· 다 마탑주님이랑 같이 했죠·”

나는 모니터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마탑주가 손가락으로 짚은 부분을 살피자 확실히 이상한 신호가 잡혀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둘이나·

하나는 센트라 페로 아브라함 등의 메인 NPC들에게 흘러들어오는 믿음·

다른 하나는 생뚱맞게도 거대 변이체에게 흘러들어오는 믿음이었다·

“···흐음· 음?”

“어 응?”

나와 마탑주는 동시에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면서 추측을 내뱉었다·

“빨간맛 공작가 차남이라는 놈한테 파심현전을 박았는데 거기에 기억이 좀 섞여 들어가서··· 그놈이 메인 NPC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 같은데요·”

“내가··· 수도기사단장을 엄청 큰 변이체로 막 막 때려줬는데 아마도 그 기억이 인상 깊이 남았나 봐···!”

어·

씁··· 어?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나와 마탑주는 이마를 맞대고 토론을 이어 나갔다·

“희미하지만 믿음 그러니까 마력으로 연결된 상태잖아요·”

“연결된 상태면··· 역추적도 가능할 거야· 거리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역추적뿐이 아니라 초 원거리 환상마법도 쏴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거 아카데미 지하의 거대 마법진을 이용하죠·”

“그 그리고··· 유리 유리한테 부탁해서· 몽마의 성질을 이용하는 거야· 꿈을 매개체로 한다면 유효 사거리를 훨씬 넓힐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나한테 배빵 먹인 놈에게 엿을 먹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니지 그뿐이 아니라··· 거듭 연결을 강화한다면 놈이 모르는 사이에 첩보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터·

나는 전율하면서 꿈과 희망을 가득 담은 단어를 내뱉었다·

“원거리 TRPG···!!”

“수 수도기사단장· 걔도 걔도 혼내 줘!”

방방 뛰는 마탑주와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고민했다· 어떤 세션을 열어야 좋을까· 뭘 열어주면 녀석을 전향하게 함과 동시에 엿도 먹이고 정보도 뽑아내고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악신(7% 함유)의 비명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TS 마법소녀 세션·”

“?”

군침이 싹 돌았다·